2021. 4. 13 02:12PM

2021 <밤의 도서관> 최종 심사평


SoA
심사위원

글과 집을 함께 짓는 공모전을 기획한 이유는 집을 짓는 행위가 글을 짓는 행위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에서다. 주제를 궁리하고, 글의 구조를 세우며, 그에 따른 내용을 채우고, 문장과 표현을 고민하는 글쓰기는, 건축 행위의 닮은 꼴이다. 건축도 구조가 있고, 장면이 전개되며, 디테일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는 이 공모전을 통해서 글의 호흡과 건축의 호흡을 섞어가면서 ‘짓다’라는 단순한 단어가 딛고 있는 생각보다 긴 과정을 학생들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랬다. 책과 건축이 가진 시간성을 이해하기를 바랬고 이를 통해 작업 결과물의 집합으로서 포트폴리오의 형식을 넘어서는 생각의 구조가 가진 참신함을 발견하고자 했다.
 
‘정림학생건축상’을 심사하면서 글로 지어 올린 수백 채의 집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일부는 ‘책’이라는 제출형식을 ‘포트폴리오’로 대체하긴 했지만, 많은 결과물이 출판을 해도 부족함이 없는 책으로 완성되었다. 며칠을 돌려가며 책을 읽었으며, 수많은 밤의 도서관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도서관의 위치를 선정하는 과정에는 이미 도서관의 역할이 어떠해야 한다는 관점이 내재해있다. 도서관의 입지를 고민하면서, 제출자들은 사람들이 도서관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하여, 그 자리에서 도서관이 수행하게 될 역할을 기대하는 연장선에서 건축적 제안을 펼쳤냈다.
 
입지에서 비롯된 도서관 건축은 크게 마을이나 블록 전체의 경관을 바꾸는 면적인 제안, 고밀도의 번화가에 대한 입체적 개입의 형태, 지하철이나 고가도로와 같은 기반시설과 결합하여 도시공간의 연속성을 회복하는 제안, 공원 나무 및 식물과의 적극적인 연계, 특정한 건축 유형을 참조한 리노베이션 계획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제일 많이 선호한 도서관 자리는 상업업무가 밀집된 번화가이다. 아마 현실 세계에서 도서관을 찾아보기 어려운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상업공간의 거대한 내부 통과 동선을 이용하거나 도시를 입체적으로 활용하는 전략들이 선보였다.
 
저층의 선형 상가 블록, 다세대 다가구 밀집 마을의 곳곳, 다세대나 연립과 같은 마을단위의 일상에 대한 개입도 자주 눈에 띄였다. 미술관, 병원, 상업시설 등 기능 위주의 프로그램보다는, 도시 안에서의 일상적인 경관을 특정 주제의식을 통해 변화시키고자 하는 근래 건축학교 커리큘럼의 영향으로 보여진다.
 
지하철과 같은 도시의 기반시설에 개입한 시도들은 기대한 것보다는 조금 아쉽게 끝났다. 기반시설이 갖는 필연적인 면모 즉, 통과동선으로서의 짧은 시간성에 대한 개입이나 분석 보다, 도시를 단절시키는 인프라의 형태적 개선에 대한 제안이 다수였던 것이 아쉽다.
 
입지로부터 자유로운 도서관의 제안도 있었는데, 자율주행과 같은 모빌리티 기술이 일상화되기까지 멀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스마트폰으로 가능해진 초연결성의 사회에 도서관의 변화에 대한 질문으로 유효하다.
 
많은 제안이 도서관의 위치로부터 출발하여 장소와 맥락, 시대에 따라서 도서관의 이용자, 형태, 운영의 방식, 도서관이 제공할 수 있는 정보의 종류와 형태를 논리적으로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제안된 많은 아이디어들이 같은 유형으로 분류될지언정 다양했다. 모든 도서관이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어떤 도서관도 고정되거나 같은 모습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림학생건축상에 제출된 제안은 도서관의 다양성에 대한 “질문의 책”이다. 도서관이 도시와 건축의 측면에서 공공성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실천해볼 수 있는 장이라는 전제 위에 이 제안들은 우리 사회 도시 건축의 공공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제안들이 다양한 만큼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는 “도서관=공공성”에 대한 지속적 탐구의 열린 가능성이기도 하다.
 

박영숙
멘토

<밤의 도서관> 심사 참여는 행운이었습니다. 흥미진진하면서도 설득력있는 작업들에 연신 감탄했고, 도서관 현장에서 바라던 일들이 현실로 구현되겠다는 설렘으로 선물을 받는 것만 같았습니다. 먼저, 편집 디자인부터 설계를 글로 풀어낸 문학적 서사에 드로잉, 제본까지, 책으로 엮은 작품들의 수준에 압도되었습니다. <In Bloom> 같은 작품들을 보면서, 도서관에서 건축분야 자료를 ‘기술과학’으로 분류할지 ‘예술’ 코너에 둘지 고민하던 까닭을 알 것 같았지요.

더 놀랍고 반가운 건 도서관의 역할에 대한 단단한 문제의식과 사유의 깊이였습니다. 매체의 발달과 사회 전반에 걸친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 팬데믹 상황까지 겹치면서 어느 때보다 가파른 변화의 요구에 맞닥뜨린 도서관들의 고민을 건축학도들의 작품에서 오롯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축적과 저장에서 활용과 창작으로, 정보의 수용자에서 생산자로의 변화를 지향하며 탐구한 과정들은 지식을 서고에서 꺼내 일상의 삶 속에서 작동하도록 만들 방법을 찾는 도서관 현장에 자극과 영감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화, 공유와 사유의 경계, 상호작용과 몰입처럼 묵직한 질문으로 출발한 다수의 참가자들은 유연함과 확장, 열림과 포용, 분산과 융합 같은 키워드들을 건져올려 도서관이 무엇이어야 하고 무엇일 수 있는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구체화시켜 주었습니다. 갈수록 도서관에서 몫이 커지는 아카이브에 주목한 작업이 많았던 점도 반가웠습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공모전에 생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자율주행 도래에 따른 교차로의 변화에 착안해  ‘도심 속 0원 대지’라는 유쾌한 베팅까지 시도한 <유령 도서관>의 모빌리티 유닛, 집의 거실과 도서관 열람실을 절묘하게 접속시킨 <Living Library>, 책이 공간을 가로질러 흐르면서 우연한 만남을 빚어내도록 고안한 <도서관 편집자>의 책배관, 책자 형태를 요구한 공모전의 조건을 ‘잡지’로 풀어내는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일상의 필요에 반응해야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월간’이라는 개념으로 은유한 <월간 도서관> 등은 수 년 내에 꼭 마주하게 될 어느 도서관의 시뮬레이션 같았습니다. 

사이트 선정 과정에서도 사유의 밀도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로 지역을 해석하고, 과감하면서도 공감되는 원칙들을 세워 사이트를 선정한 <Living Library>는 도서관을 계획하는 데 유용한 실마리들을 제공했습니다. 접근성만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까지 조사해 지금 그곳에 깃들인 사람들의 관계망을 매개하고자 한 <1분 미리듣기>, <한 걸음만 내디디면 책이 있다> 같은 작업들은 ‘고객개발’을 고민하는 도서관들에게 의미있는 인사이트를 줄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공원일몰제에 착안한 <Media Park>는 여러 지자체에서 채용할 만한 정책대안으로 보였고, 핫플레이스를 새로운 시선으로 변신시킨 <수열이 지배하는 공간>은 당장 시공하면 좋겠다는 욕심이 들게 했습니다.

아쉬움이라기보다는 희망사항을 덧붙인다면, 도서관의 일상에서 실재하고 또 일어날 수 있는 역동이 좀 더 구체적으로 고려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연겨푸 제시된 지식의 순환과 생산, 다양한 사람들의 교류와 협업을 실제로 북돋울 수 있도록 자료의 배치와 관리, 동선 계획 등 도서관 이용과 서비스에 필요한 요소들을 보완하여 발전시키는 아이데이션 과정을 기대합니다. 그럴 수 있도록, 공모전을 ‘발제’ 삼아 건축학도들과 사서들이 함께하는 토론과 스터디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 만남은 낮의 도서관을 지배했던 ‘질서’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사위가 어둑해진 ‘밤의 도서관’에서 열어봐도 좋겠습니다.

수상작 선정을 곤혹스럽게 만든 작품들이 아까워 도서관에서 전시를 하고 싶다고 청했습니다. 흔쾌히 허락해주신 재단에 감사드리며, 건축학도와 사서, 시민들의 만남에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 봅니다. 기량만 겨루는 공모전이 아니라, 선후배들이 경험과 지혜를 나누며 함께 주제를 탐구하고 성장하는 과정으로 설계한 정림학생건축상의 시스템, 도면 대신 책이라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내주신 기획자님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이 무력한 기성세대의 청년들에 대한 걱정과 안쓰러움을 믿음과 기대로 바꿔준 모든 참가자들께  힘찬 응원을 전합니다.


느티나무도서관 박영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