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결과 발표

대상

  • 2026-00120 시골쥐들의 마을 세우기 / 백준혁(인하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이은탁, 김성일(인하대학교 건축학과)
  • 2026-00182 My Legacy is Our Legacy / 이시암, 권건도, 장은수(국립공주대학교 건축학과)
  • 2026-00214 청파동 소방 커먼즈 / 김한석, 박성욱(명지대학교 건축학부 건축학전공), 안문석(명지대학교 건축학부 전통건축학전공)
  • 2026-00221 목욕재개 / 박유진(숙명여자대학교 환경디자인학과), 이지훈, 이승헌(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 2026-00384 이 조합으로 모여서 해낼 줄은 상상도 못했어 / 이혜연(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입선

  • 2026-00066 침투하는 집 / 박진영, 구서진(세종대학교 건축학과)
  • 2026-00128 PATCHWORK / 이한결, 정지우(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 2026-00143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 유지후, 전정우, 장인경(국민대학교 건축학부 건축설계전공)
  • 2026-00167 문어와 뒤란과 집 / 김세헌, 문태희(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김린(고려대학교 건축사회환경공학부)
  • 2026-00175 살아라, 그대는 아름답다 / 변현(원광대학교 건축학과)
  • 2026-00196 (     ) MATE / 박준혁, 류정민, 방수혁(한양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학과)
  • 2026-00218 여전히, 나의 곁에 / 오차연, 신성현(인하대학교 건축학과)
  • 2026-00253 지붕이 주는 기쁨 / 백민서, 염선웅(홍익대학교 건축학과)
  • 2026-00258 ‘잘’ 살기 위한 기계 / 김성원, 감대언, 김민경(부산대학교 건축학과)
  • 2026-00315 커피… 한 잔 할래요? / 최형석, 김두겸, 이규현(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건축학전공)

대상 - 시골쥐들의 마을 세우기

백준혁(인하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이은탁, 김성일(인하대학교 건축학과)

시골쥐들에게 도시는 ‘기회의 장소’로 여겨진다. 일자리와 교육, 문화 인프라가 층층이 쌓인 그곳을 향해 우리는 꿈을 품고 상경한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도시의 삶은 사뭇 다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왔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벽으로 둘러싸인 단칸방에 몸과 마음을 욱여넣은 채 작아져 버린 나의 세상을 발견하곤 한다. ‘내 공간’이 아니면 곧바로 ‘모두의 공간’으로 도약할 수밖에 없는 도시의 일상 속에서, 내 취미를 담을 공간도, ‘우리’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고향의 시골집은 조금씩 결이 다른 여러 겹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내 방에서 마당을 지나 낮은 담장 너머 골목까지 이어지는 다채로운 공간들 속에서 우리는 ‘나’의 취향을 즐겼고, 때로는 마을의 틈새를 통해 이웃과 ‘우리’가 되었다. 혼자이면서도 외롭지 않았고, 함께이면서도 침해받지 않던 삶. 시골에서는 일상이었던 그 풍경이 도시에서는 그저 판타지처럼 여겨진다.
삭막한 도시에서도 ‘나’로서, 동시에 ‘우리’로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시골 마을을 도시 안에 재현해 보려 한다. 다만 도시는 협소하기에 시골 마을을 그대로 구현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도시의 밀도에 맞춰 수평으로 펼쳐져 있던 시골 마을을 수직으로 세워 올릴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세운 마을에서 ‘기존의 집’은 주거 유닛이 되고, ‘담장’은 구조이자 경계로 변모한다. ‘마당’은 개인의 판타지를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며, ‘부속건물’은 그 판타지의 실현을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다. 개구멍과 같은 ‘틈새’들은 이웃과 ‘우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연결부로 작동한다.
서울 후암동의 어느 골목에 우리의 마을을 처음 제안하며, 그 모습을 상상해 본다. 501호의 온실 쥐는 302호의 운동 쥐와 친구가 되어 서로의 집을 수직 철봉으로 연결해 취미를 공유한다. 402호의 회사 쥐가 출근하면, 반려동물들은 401호 작가 쥐의 집으로 가 심심함을 달래며 돌봄을 나눈다. 301호 형아 쥐의 마당에 놓인 놀이터에는 어린이 쥐들의 웃음소리가 번지고, 1층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경로당의 할머니 쥐들이 그 풍경을 흐뭇하게 지켜본다.
도시의 빠른 시간 속에서 이웃이 바뀌어도 마을의 온기는 식지 않는다. 기존의 판타지가 있던 자리에는 새로운 판타지가 들어서고, 틈새는 또 다른 관계를 낳는다. 이렇게 마을은 판타지와 관계를 비우고 채우며 지속된다. 시간이 지나 도시 곳곳에 마을이 늘어나면, 이번에는 마을끼리도 ‘우리’가 되어 간다.
시골쥐와 도시쥐의 이야기는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이야기다. 시골쥐들이 세운 이 마을을 통해, 도시 또한 ‘나’의 판타지가 공존하며 ‘우리’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곳이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도시에 지친 시골쥐들의 삶을 응원한다.
 

대상 - My Legacy is Our Legacy

이시암, 권건도, 장은수(국립공주대학교 건축학과)

과몰입에서 시작한 건축 이야기
이 작업의 시작은 일상의 아주 작은 장면이었다. 건축이라는 거대한 담론과 이미지 중심의 경쟁적 작업 방식에 회의를 느끼고 돌아온 청파동에서, 나는 이름 없는 골목의 틈에 앉아 시간을 보내며 오래된 의자 하나에 이름을 붙이고 애착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의자가 사라졌을 때, 나는 그것이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내가 맺고 있던 소중한 ʻ관계’의 일부였음을 깨달았다. 골목을 다시 바라보자, 집 앞에 내어놓인 물건들은 방치된 물건이 아니라 각자의 삶이 담긴 생명력 있는 존재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이 애매한 공간에 작은 선반 하나를 내어놓았다. 며칠 뒤 그 선반은 사람들의 물건들로 가득 찼고, 이웃집 할아버지의 제작 요청과 함께 이 개인적인 실험은 ʻ공동체적 책임감’을 띤 건축적 제안으로 확장되었다.

청파동 애매모호 지도
청파동의 공간 구조를 Mapping, Scan, Measure의 방식으로 조사하며, 나는 개인의 행위가 어떻게 점유화를 거쳐 사유화로 발전하는지 그 흐름을 관찰했다.

  • 점(Point): 개인적인 물건들은 머무름의 가능성을 만드는 시작점이자 생활의 흔적이다.
  • 선(Line): 반복된 점유는 집과 도로 사이의 애매한 경계 공간을 형성하며, 이는 구조 이전에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합의 상태이다.
  • 면(Plane): 개인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 지붕, 계단, 발코니 같은 덧대기 구조가 등장하며 삶이 건물 바깥으로 확장되며 사유화 과정으로 확장된다.

청파동의 입면은 이처럼 시간과 필요가 겹겹이 덧씌워진 ʻPalimpsest’와 같다. 이 흔적들을 채집하여 블록 단위로 조합하고, 익숙한 손의 행위를 결합 원리로 삼아 새로운 건축적 대안을 도출했다.

아워 시리즈
첫번째 제안으로 ʻOur Facade’는 기존의 청파동의 파사드를 까뒤집어 점유의 경계를 흐리는 방식이다. 내 집 앞인지 우리 집 앞인지 모를 애매한 공간이다. 마을에서 소문이 퍼지고 이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만리시장 뒤편의 오래된 봉제공장을 ʻ플라스틱 방앗간’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은 마을의 폐플라스틱 자원을 수거하여 건축 부재로 재생산하는 운영 프로토콜의 거점이다. 카페, 쇼룸, 작업장이 연결된 이 플랫폼은 생산과 수리, 전시와 생활이 한 공간에서 교차하며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두번째 제안으로 ʻOur Balcony’는 점유화를 넘어 사유화에 대한 필요에 의해 생긴 수직·수평으로 증식하는 구조체이다. 한 세대의 확장이 다음 세대의 확장 조건이 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간섭은 이웃 간의 ʻ합의’를 이끌어낸다. 기생충 ʻ레우코클로디움’이 달팽이를 숙주로 삼아 자신을 드러내고, 새에게 포식되며 더 큰 스케일로 확산되듯, 아워 파사드와 발코니 역시 외벽에 기생하며 증식한다.
그리고 두 구조물이 서로 맞닿는 순간, 하나의 ʻ포티코’(Portico) 공간이 형성된다. 이 공간은 처음부터 계획된 질서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가 충돌하고 조율되는 과정 속에서 생성된다. 31개의 기둥이 만들어내는 느슨한 숲과 같은 구조 속에서, 사적인 확장은 비로소 공공의 장면과 연결된다.

합의를 통해 만들어 나가는 우리의 유산
이 프로젝트는 거창한 기념비적 유산을 남기려는 시도가 아니다.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조금씩 곁을 내어주며 합의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가는 ʻ과정’ 그 자체에 주목한 것이다. 나의 지극히 사적인 애착과 점유로 생긴 ʻ나의 유산’(My Legacy)이 타인과 관계를 맺는 순간, 그것은 ʻ우리의 유산’(Our Legacy)이 된다. 과몰입에서 시작된 이 작은 리서치가 도시를 바꾸는 단초가 되길 바라며. 청파동을 넘어 또 다른 동네로 이어질 우리의 작업은, 삶이 건물의 경계를 넘어 밖으로 흘러나오는 따뜻한 풍경을 계속해서 만들어갈 것이다.
 


대상 - 청파동 소방 커먼즈

김한석, 박성욱(명지대학교 건축학부 건축학전공), 안문석(명지대학교 건축학부 전통건축학전공)

‘우리 어떡해’라는 말은 이미 어떤 사건·문제 안에 들어와 있을 때 튀어나오는 말에 가깝다. 이 말은 보통 상황이 정리되지 않았을 때, 책임이 명확하지 않을 때, 그리고 개인의 판단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을 때 등장한다. 즉 ‘우리 어떡해’는 공동체가 형성된 이후에 나오는 말이라기보다, 나와 네가 한순간에 우리로서 묶이는, ‘공동체가 강제로 호출되는 순간의 언어’다.
이 말이 반복해서 등장하게 되는 삶의 구조에 주목한다. ‘우리 어떡해’라는 말이 자주 튀어나온다는 것은, 오늘날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범위가 자주 붕괴되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붕괴는 현재의 주거 환경과 도시 구조의 조건들에서 발화한다. 이 프로젝트는 그 불씨를 발견해 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오늘날 '청년으로서의 우리'는 점점 더 축소된 주거 공간 안에서 살아간다. 원룸은 의식주만을 담는 최소 공간이 되고, 생활의 상당 부분은 주거 바깥으로 밀려난다.  '우리'의 열악한 거주환경은 익숙한 나머지 드러나지 않는 잠재된 위협이며, 집 안에서의 공동감각을 가지는 생활은 실제로 작동하기 어려운 상태인, 일종의 현실적 판타지이다. 그럼에도, 서울로 향하는 우리는 경제적인 이유로 거주환경의 많은 부분을 타협하며 전전한다.
청파동 일대는 서울의 중심부에 머무르기 위해 가파른 경사, 부족한 기반시설, 취약한 거주환경을 감내해야 하는 장소다. 청파동의 경사와 단차는 물리적 제약이자, 동네의 느슨한 질서를 형성하는 매개공간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동네의 구옥들은 낡고 노후화되었지만, 다양한 형태와 양식이 공존하는 풍경을 자아내며, 구옥의 군집은 소방취약지역의 군집으로 이어진다. 청파동의 제약들은 이미 하나의 전제이자 조건이다.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공동의 판단이 요구되는 현실이 보편적이고 피할 수 없는 조건이라면, 이를 제거해야 할 문제로만 볼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를 하나의 전제로서 바라보고 일상과 비상이 이미 겹쳐진 상태로 살아가는 삶의 모양을 전제로 할 때, 건축은 이 조건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까. 이 프로젝트의 설계는 이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대상지인 청파로 71길은 소방취약군집 내에 위치하며, 3.5m의 도로폭, 구불구불한 경사로의 쿨데삭이다. 청파동의 취약성을 모두 포함하는 조건을 가진다. 우리는 이러한 조건 속에서 ‘소방 커먼즈’를 제안한다. 소방차가 접근이 불가한 골목을 마주한 건물은 하나의 거대한 소방차처럼 작동하며, 골목의 형상에 맞게 삽입된 건축은 주변 구옥의 비상 상황을 대비하는 인프라가 된다. 이러한 건축이 여러 지점에 분산 배치되면 마을 단위의 새로운 질서가 형성된다. 기존 소방시스템이 닿지 못했던 골목은 새로운 건축을 매개로 작은 공동체 단위에서 작동하게 되고, 점 단위의 개인이 시스템의 핵심이 된다. 건축가는 그 사이에서 수평적인 소통과 조율을 담당하며, 비상의 대비는 점차 일상을 묶어주는 연대의 기반으로 전환된다.
 

대상 - 목욕재개

박유진(숙명여자대학교 환경디자인학과), 이지훈, 이승헌(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우리는 ‘목욕’을 단순히 몸을 씻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경험으로 바라보았다. 목욕탕에서의 경험은 일정한 루틴으로 반복된다. 샤워를 하고 온탕과 열탕을 오가며 몸을 데우고, 사우나와 냉탕을 거쳐 다시 탕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단순한 행위를 넘어 일종의 의식처럼 작동한다. 그리고 목욕이 끝난 후 마시는 바나나우유까지, 이 일련의 흐름은 몸을 씻는 행위 이상의 만족감을 만들어낸다. 샤워가 개인의 위생을 위한 행위라면, 목욕은 타인과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며 형성되는 감각적 경험이다.
목욕탕에서는 탈의실에서 옷을 벗는 순간 사회적 역할이 해제된다. 직업이나 나이, 위치와 같은 외부의 기준은 옷과 함께 벗겨지고, 개인은 보다 평등한 상태로 전환된다. 탕과 사우나에서는 낯선 타인과 같은 온도를 공유하며 물리적, 심리적 경계가 흐려진다. 말없이 이어지는 사우나 속의 긴장감이나 더 오래 버티기 위한 암묵적인 경쟁, 그리고 때를 밀며 서로의 몸을 맡기는 순간은 개인을 넘어서는 관계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경험은 목욕이 개인적인 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라는 감각을 형성하는 장치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오늘날 목욕탕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가정 내 위생시설의 보편화와 시간 효율, 프라이버시의 중시는 목욕탕의 필요를 감소시켰고, 그와 함께 공동체적 경험 또한 희미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 목욕탕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목욕의 가치를 현대 도시 속에 새롭게 작동시키는 방법을 고민하였다. 이에 따라 목욕을 특정 건물에 한정된 기능이 아닌, 일상의 흐름 속에 스며드는 경험으로 재구성하고자 했다.
대상지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이다. 이곳은 현재 대규모 재개발을 통한 급격한 주거 재편이 일어나는 동시에, 오래된 다세대 주택단지의 흔적이 공존한다. 기존 거주민과 새로운 주민들의 혼재 속에서, 이문동은 일상의 관계를 이어줄 작은 인프라가 필요한 시점이다. 도시 속 반복적인 접점을 만들기 위해 한국외국어대학교 캠퍼스 내, 기존 주택단지, 그리고 외대앞역의 작은 광장 세 곳을 사이트로 선정하였다.
첫 번째 제안은 이문동 주거지 중심의 생활 거점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슈퍼마켓과 코인세탁소, 그리고 목욕탕이 결합된 공간에서 사람들은 장을 보거나 빨래를 맡기듯 자연스럽게 목욕을 경험하게 된다. 기존 목욕탕의 카운터는 단순한 출입 기능을 넘어, 일상과 목욕을 연결하는 매개로 확장된다. 사람들은 슈퍼마켓에서 결제를 하고 목욕탕으로 들어가며, 목욕 이후에는 도로와 맞닿은 평상에 앉아 쉬거나 주변 시설과 연결된 활동을 이어간다. 이는 기존의 생활 패턴 속에 목욕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방식을 제안한다.
두 번째 제안은 이문동 한국외국어대학교 내 목욕탕이다. 도서관과 강의실 사이에 위치한 이 공간은 학습과 휴식 사이의 중간 상태를 제공한다. 카페와 스터디 공간, 소규모 회의실과 결합된 목욕탕은 학생들이 공부 도중 잠시 몸과 사고를 이완시키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기존의 딱딱한 학습 공간과 달리, 목욕은 사고의 전환을 유도하고 보다 유연한 생활 리듬을 만들어낸다. 작은 단위로 나뉜 목욕 공간은 공유와 프라이버시 사이의 균형을 형성하며 다양한 사용 방식을 수용한다.
세 번째는 1호선 외대앞역 교통섬과 같은 도시의 잔여 공간에 제안하는 목욕의 경험이다. 빠르게 이동하는 사람들의 동선 속에 완만한 물의 흐름을 만들어, 잠시 발을 담그거나 머무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한다. 이 공간은 단순히 통과되는 장소를 넘어 짧은 이완의 순간을 제공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각기 다른 속도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자신의 리듬에 맞게 머무르고 떠날 수 있는 상태를 만든다.
이처럼 본 프로젝트는 목욕을 특정 시설에 국한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도시와 일상 전반에 걸쳐 확장 가능한 관계적 장치로 재해석한다. 개인의 위생을 넘어 타인과의 공존을 경험하게 하는 목욕의 가치를 다양한 도시 맥락 속에 삽입함으로써,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의 감각을 다시 회복하고 새로운 도시적 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공간 제안을 넘어 도시 속 관계를 재구성하는 하나의 전략이다.


대상 - 이 조합으로 모여서 해낼 줄은 상상도 못했어

이혜연(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개인들은 함께하고 함께 하기 때문에 무한한 엮임의 가능성을 가진다.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동료들과의 동행 속에서, ‘나’는 다양한 조합을 통해 수많은 가치-삶의 의미를 만들 수 있다. 근대화의 주된 방향에서 비켜선 채 잔존해 온 인현동 인쇄 골목에서, 우리는 조합이라는 방식의 유연성과 이것이 만들어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힘을 보았다.

더 많은 나를 향하여 열리는 인현동 인쇄골목
인현동은 1~2인 규모의 작은 인쇄 관련 업체 약 3500곳이 밀집한 동네이다. 인쇄물의 종류에 따라 각각의 업체가 매번 조합되어 하나의 인쇄물을 만들어내는 산업 구조는 긴급한 발주 요청에도 빠르고 유연한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진다. 그 결과 인현동은 조합형 인쇄업체 집적지로서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도심에 잔존해 있다. 그러나 인현동은 폐쇄적이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거래 관계를 전제로 작동하는 B2B 중심의 산업 구조 안에서, 한 번도 인현동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들어오지 못한다. 인현동의 강점이었던 다양성은 약해지고 있으며, 새로운 소재와 공정을 시도하며 인쇄의 범위를 확장하는 움직임이 커져야 할 시점이다. AI 등 기술의 발전으로 개인의 생산력은 높아졌지만 브랜딩에서 제품 제작까지의 실무 경험이 부족한 주체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인현동 인쇄 골목과 조합될 수 있는 새로운 개인이다.

거 봐, 모이니까 할 수 있잖아
이 설계는 새로운 개인들이 인현동의 조합 구조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길의 폭과 필지 규모라는 두 척도에 따라 블록 내 건축물을 네 가지로 분류하고, 각 부지 특성에 맞는 설계 전략을 통해, 인현동이 새로운 개인과 새로운 조합을 맞이할 준비를 돕는다. 도로를 따라 리듬감 있게 늘어선 도로 작은 필지 연속형 건축물은 입면의 리듬감을 유지하며 2층으로 증축해 삼발이 운전기사님과 사장님, 방문객을 위한 창고 겸 쉼터와 화장실이 된다. 방대한 네트워크를 가진 기획사 사무소와 달리 좁은 네트워크를 가진 개별 공정 업체 사장님들의 접점을 만들어준다. 세 갈래의 길에서 인현동 인쇄 골목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도로 큰 필지 후퇴형 건축물은 로비가 없는 인현동 전체 블록의 로비 역할을 한다. 어느 길에서 들어오든 인포 데스크로 향하도록 1·2층을 대수선하고, 뒤로는 회의실·자료실·세미나실을 배치했다. 6개의 방 중 4개가 공실이었던 골목 작은 필지 연접형 건축물은 벽의 절반만을 남겨 방에서 방으로 이동하며 각 인쇄 공정을 배울 수 있는 프린팅 라이브러리가 된다. 막다른 골목 끝의 골목 큰 필지 종점형 건축물은 세 건물의 맞닿은 벽을 철거해 5갈래 골목의 결절점이라는 새로운 접근성을 가진 기획사 사무소의 공간을 만들었고, 그 위 11층 규모의 레지던스가 얼굴 없던 건물의 새로운 간판이 된다.
우리를 지속하기 위해, 새로운 개인을 맞이하며 새롭게 조합됨을 반복하는 미래를 그려본다.


입선 - 침투하는 집

박진영, 구서진(세종대학교 건축학과)

‘침투하는 집’은 오늘날 서울의 주거가 안정된 정주의 기반이 아니라, 불안정한 삶을 임시로 지탱하는 구조가 되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 프로젝트는 그러한 현실을 사회적 진술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주거의 공간 조직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건축적으로 읽어낸다. 특히 혼자 살아가지만 완전히 고립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며, 세대 내부와 도시 사이에 놓인 현관 앞, 복도, 계단참, 건물 사이의 틈과 같은 중간 영역에서 새로운 주거의 가능성을 찾는다.
대상지인 가리봉동은 다양한 인구층이 공존하지만, 각자의 생활반경과 시간대가 분절되어 느슨한 병존 상태를 이루는 장소이다. 프로젝트는 이러한 분절을 부정하기보다, 그 안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미세한 접촉의 조건을 발견하고자 했다. 특히 가리봉동의 이른바 벌집형 주거는 좁은 대지 안에서 세대 수를 확보하기 위해 외부와 맞닿는 면을 늘리고, 공용 화장실과 복도, 계단 등 사이 공간을 독특하게 조직해 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형태 그 자체보다, 그 배치가 만들어내는 생활의 틈이다.
현장 조사에서는 덧대어진 구조물, 굴곡진 복도, 대문 앞 여백, 후면의 자투리 공간, 외벽을 따라 연결된 흔적 등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이 과정에서 프로젝트는 두 건물 사이의 틈이 단순한 잉여공간이 아니라, 이미 삶이 번져 나와 있는 장소임을 확인한다. 예를 들어 볕이 드는 면과 비어 있는 후면 사이에 빨랫줄이 연결된 장면은, 계획된 관계는 아니지만 생활의 필요가 이미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각 세대 앞에 놓인 생활 흔적, 바깥으로 밀려 나온 사소한 물건들, 머무름이 발생하는 계단참과 복도 모서리를 기록하며, 거주자들이 집 바깥에 어떻게 자신의 생활을 확장하고 있는지도 추적했다. 이러한 흔적은 무질서한 적치가 아니라, 각자의 리듬과 애착, 필요가 외부로 번져 나온 결과로 읽힌다.
이러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제안된 것이 ‘침투하는 집’이다. 이는 두 건물 사이에 새로운 덩어리를 삽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의 틈과 경계, 진입부와 공용동선을 다시 조직하여 집의 성질이 서서히 스며들게 하는 제안이다. 침투는 단순한 물리적 개입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대가 직접 결합하지 않더라도 상대의 인기척과 생활의 온도를 감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건축적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사적 공간을 해체하는 데 있지 않고, 사적 영역 바깥에 있으나 여전히 집의 일부로 작동하는 중간 영역을 두텁게 만드는 데 있다.
결국 ‘침투하는 집’은 공동체를 강요하는 제안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존재하는 삶의 흔적과 비공식적 사용을 세심하게 읽고, 그것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건물 사이의 틈을 채우기보다, 그 틈 속에 이미 존재하던 삶의 가능성을 건축의 언어로 드러내고 재조직한다.


입선 - PATCHWORK

이한결, 정지우(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PATCHWORK는 건축에서 점차 소실된 ‘장식성’을 회복하고, 개인이 자신의 삶을 공간 속에 능동적으로 새겨 넣을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서 출발한다. 원시적 건축이 직조된 벽과 장식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과 달리, 현대 건축은 매끄럽고 균질한 표면을 제공하며 사용자로부터 공간을 만들어가는 감각을 점차 멀어지게 했다. 우리는 장식을 단순한 부가 요소가 아닌, 삶을 구성하는 적극적인 행위이자 공간을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확장해 ‘장식적인 삶’을 제안한다.
이러한 장식적 감각은 어린 시절의 비밀기지와 같은 자발적 공간 구성에서부터 시작된다. 성장 이후에도 우리는 학교 개인 책상, 방, 원룸, 더 나아가 도시 속 다양한 장소를 스스로의 방식으로 점유하고 해석하며 ‘나의 공간’을 만들어간다. 이처럼 개인의 취향과 선택이 축적된 장식적 파편들은 도시의 입면을 형성하며, 서로 다른 삶이 공존하는 패치워크와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서울 청량리 부흥주택은 처음 가지는 나의 공간으로 장식적인 삶을 회복하는 시작이 된다. 기존의 획일적 구조 위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증축과 변형을 반복하며 각자의 공간을 만들어온 장소로, 장식적 삶이 잘 드러난 곳으로 볼 수 있다. 일부 세대에서는 담벼락을 둘러 작은 마당을 만들거나, 계단 옆에 덧붙인 공간을 창고 또는 작업실로 사용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본 프로젝트는 공간의 경계를 물리적으로 구분하기보다 옅게 드러내 부흥주택 단지 내부에서 수많은 경계를 만들어온 ‘미장’에 주목한다. 미장은 개인의 취향과 흔적이 드러나는 장식적 경계로 밀도 높은 도시 환경 속에서 공간을 인식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동해왔다.
설계는 최소한의 개인 공간(침대, 책상, 옷장, 위생시설)을 중심으로, 경계의 농도에 따라 확장된 개인 공간과 공유 공간을 단계적으로 구성한다. 기존 부흥주택의 다양한 계단들은 보존 및 재해석되어 1인 주거 유닛의 핵심 요소로 작동하며, 세대 간 관계를 매개하는 장치가 된다. 또한 계단 접근성이 낮은 영역은 공방, 카페, 세탁실 등의 공용 공간으로 전환되어 이웃 간의 교류를 촉진한다.
각 세대 앞의 공유 공간은 연결되어 회랑을 형성하고, 기존의 폐쇄적 골목은 보다 열린 폭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이는 단순한 이동 경로를 넘어 다양한 사건과 관계가 발생하는 장소로 전환된다. 몇몇 유닛들은 수직적으로 열린 공간으로 구성해 개인과 타인의 시선이 교차하는 새로운 공간 경험을 만들어낸다. 개인의 삶이 반영된 장식적 행위들이 다양한 스케일의 공간 속에서 축적되고 확장되며, 도시 전체를 구성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가구, 벤치, 플랫폼을 부흥주택 단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적색 벽돌로 디자인하여 도시 곳곳에 놓아 부흥주택 전체 부지를 하나로 연결하고 사람들의 여러 장식을 수놓을 수 있는 공간으로 제안한다.
작은 방에서 시작된 ‘나의 공간’은 회랑, 공유 공간, 공원으로 이어지며 점차 확장되고,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삶이 중첩되고 공존한다. 이는 획일적 공간이 아닌, 각자의 방식으로 꾸며지고 정의되는 도시를 제안하는 것이며, 장식적 삶이 지속될 수 있는 배경을 구축하는 시도이다.
 


입선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유지후, 전정우, 장인경(국민대학교 건축학부 건축설계전공)

1. 우리 어떡해?: '사회적 무소속'과 점유의 공간
5년간 머물던 설계실에서의 퇴거는 단순한 작업 공간의 상실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설계실은 개인의 책상(1600*700 mm)이라는 최소 단위를 기반으로 취식, 휴식, 작업이 능동적으로 일어나는 밀도 높은 공동체 공간이다. 그러나 도시 안에서 이러한 '장기 체류'와 '물리적 점유'가 동시에 허용되는 공간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공공 공간은 특정 시간 동안 머물다 떠나야 하며, 개인의 물건을 부릴 수 있는 중간 영역이 부재한다. 본 프로젝트는 이 지점에서 사회적 소속감이 느슨해진 이들을 위해, 아무 이유 없이 찾아가 오래 머물 수 있는 '도시 단위의 설계실'을 탐색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2. 대상지 분석: 고속터미널 꽃시장의 시간적 적막
도시 내에서 설계실의 성격-열린 평면, 가변적 밀도-과 가장 부합하는 장소는 낮 시간대에 비어있는 '새벽 시장'이다. 그중 인프라가 안정적이고 다양한 인구 집단이 교차하는 고속터미널 꽃시장을 대상지로 선정한다. 이곳은 밤 12시부터 낮 12시까지 운영되며, 이후 낮 시간에는 거대한 공간이 유휴 상태로 남는다. 반면 인근의 재택근무자, 프리랜서, 학생 등 '사회적 무소속' 집단은 카페 등에서 커피 가격으로 환산된 짧은 시간만을 허락받으며 부유한다. 본 안은 이 두 집단의 시간대를 교차시켜 공간의 활용도를 극대화할 것을 제안한다.

3. 시장의 메커니즘: 관계와 생애를 담은 단면
기존 꽃시장은 위탁 판매 중심의 관계 기반 공동체라는 점에서 설계실의 풍경과 닮아 있다. 그러나 공간 구조상 상인과 물류 중심의 동선만 강조될 뿐, 소비자와 방문객을 위한 점유 공간은 계단실 등으로 밀려나 소속감을 저해하고 있다. 또한, 꽃의 진열 방식은 꽃의 생애(신선도)에 의해 디자인된다. 입고 초기에는 얼굴이 잘 보이게 눕혀 진열하고, 시간이 지나 선도가 떨어질수록 줄기를 잘라 물통에 꽂는 방식이다. 이러한 '꽃의 생애에 의한 진열'과 '지면의 단차를 이용한 소통' 방식을 건축적 유닛의 핵심 모티프로 삼는다.

4. 건축적 제안: 유닛의 전환과 입체적 루프
밤에는 꽃시장으로, 낮에는 작업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공간 전환 시스템'을 구축한다.
  • 가구 시스템의 전환: 역계단식 '저온 창고'는 하부에서 꽃을 전시하는 동시에 낮 시간 작업자의 접근을 제한하여 재고를 보호한다. '상온 진열대'는 낮이 되면 덮개가 열리며 작업자를 위한 책상, 의자, 서랍장으로 변모한다.
  • 동선의 입체적 분리: 기존의 혼재된 동선을 개선하기 위해 소비자, 판매자, 물류의 레벨을 단면적으로 분리한다. 소비자는 다양한 꽃을 조망하고, 판매자는 높은 레벨에서 시장 흐름을 파악하며, 물류는 최상단에서 효율적으로 이동한다.
  • 도시적 맥락의 확장: 3층에 고립되었던 꽃시장을 1~4층으로 통합 확장하고, 1층 터미널의 유동인구가 유입되도록 전체를 순환하는 '빙글빙글 루프'를 배치한다. 이 루프는 완만한 경사를 가지며 시장과 하부 공동체 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도시적 산책로가 된다.

5. 결론: 향기로운 공존의 아지트
시장 유닛 하부에 형성되는 ‘주렁주렁’ 공간은 공동체의 영역으로 설정한다. 밤에는 상인들이 식사와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 되고, 낮에는 도서관, 전시실, 수공간 등 사회적 무소속 집단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작동한다. 12시간의 사이클을 통해 공간을 공유하는 이 시스템은, 물리적 장소를 넘어 '사회적 소속감을 잃어버린 누구나 언제든 머무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건축적 상상이 더해진 이 낮의 꽃시장은, 사람들이 향기로운 꽃과 함께 교류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도시의 새로운 대안적 풍경이 될 것이다.
 

입선 - 문어와 뒤란과 집

김세헌, 문태희(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김린(고려대학교 건축사회환경공학부)

0.
뒤따라 나올 세 이야기는 세 사람의 ‘우리’에 대한 개인적인 관점에서 출발함을 밝힌다. A, B, C 각각에서의 화자는 비인간과의-적층된 기억으로의-유동적 경계로써의 차원에서, ‘나’라는 단어의 함의 속에 이미 ‘우리’가 내포함을 찾아낸다. 이러한 시선으로 새롭게 바뀐 세계를 인정한다면 결국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을까? 각 다리가 마치 문어처럼 더듬더듬 탐색해 나가는 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어떠한 세계를 마주하게 될까?

A. 문어가 되고 싶어요
본 글은 ‘문어가 되기 위해’ 더듬더듬 나아가는 나의 개인적 관찰일지이다. ‘나이며 우리’를 이미 이뤄낸 문어의 삶은, 신체에게 판단을 위임하는 이들의 분산 사고적 특성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조사의 결과보다도, 그 과정이 데려온 곳은 바로 ‘우리는 이미 문어’라는 지점이었다. 헤드폰 인공지능 세탁기 청소기 등… 오늘날의 도구는 내 ‘또 다른 다리’로 새롭게 자라났다. 집, 지하철, 무인카페에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 모두가 문어로 변해버린 세상에선, 큰 광장보다 잘 만든 여러 무인 매장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B. 보이지 않는 뒤란*들
‘보이지 않는 뒤란들’은 저와 어머니의 대화록이자, 공동화된 기억이 공간을 매개하여 우리를 우리로 엮어줄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에요. 어머니가 직접 증축한 저희 집 복도 공간에서의 제 경험과 기억, 그리고 50년 전의 어린 어머니에게 심겨진 집 뒤란에서의 기억. 두 기억이 겹쳐지는 지점을 향해 대화와 몸짓, 스케치를 오가며 서로의 기억에 모양을 부여해갔어요. 어머니와의 대화가 마무리된 후에도 저의 질문은 확장되어 갔답니다. 지금, 도시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뒤란은 어떤 모습일까요?
* 집 뒤 울타리의 안

C. 우리 어떡해?
작업은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이미 함께 살아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도시는 타인과의 동시적 사용을 전제로 작동하며, 우리는 매일 서로의 간격을 조정하며 살아간다. 이 연구는 사람마다 편안한 거리가 다르지만, 반복적인 마주침이 쌓이면 낯선 사람과 공간도 점차 편하고 안전한 집과 같게 인식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를 바탕으로, 특정한 사람과의 친숙함이 그 사람이 점유하던 공간까지 편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설문과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를 조사했다. 연구 결과, 편안함은 고정된 물리적 조건이 아니라 관계의 축적과 익숙함의 형성 속에서 만들어지는 상태로 드러났다. 결국 ‘집’과 ‘편안함’을 하나의 장소가 아니라, 타인과의 간격이 침범이 아닌 조화로 전환될 때 생성되는 공간이다.

1. 문어들이 사는 마을**
불안들이 나를 포위해 오던 때, 아스라이 점처럼 보이던 나의 집은 한순간 촉수처럼 뻗어 나와 도시 속으로 더듬더듬 흩어졌다. 그렇게 마주한 세상은 공과 사가 뒤바뀐 문어들의 세상. 사방에서 다가오던 불안과 염려는, 벼랑 끝에서야 우리에게 우리를 선물해 주었다. 그러한 결과로 물건들이 파도처럼 넘실넘실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우리는 도시 속에서 문어처럼 헤엄치듯 살게 되었다. 마치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처럼. 우리가 나이고 내가 우리인 듯… 우리는 이 가상의 하루 속에서 마주친 풍경들을 기록했다.
지하상가 추락세는 무인점포의 비대화를 데려왔고, 사람들은 지하철에 하나둘씩 개인의 부엌을 가져왔다. 초단기 임대업의 극단을 달리던 카페 문화의 종착점은 ‘구축 아파트 같은 카페’였고… 어딘가 일그러진 일상성과 자기 인식을 통해 역설적으로 우리는 내면에서부터 공동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사람들은 기묘한 세상 속에서 집의 부분을 계속해서 기억해 내고 생성해 냈다. 이들 간 경험-기억이 겹쳐지는 일상의 공통 공간이 모두의 뒤란으로 변한 것이다. 
**옥토폴리스 (Octopolis) : 먹이와 은신처가 집중된 특정 해저 환경에서 의도하지 않게 밀집해 살게 된 문어들의 자연 관찰 사례이다. 옥토폴리스는 사회가 반드시 규칙이나 협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 조건만으로도 ‘느슨한 공존’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입선 - 살아라, 그대는 아름답다

변현(원광대학교 건축학과)

움벨트(Umwelt)
<원령 공주> 속 인간과 동물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자연’을 전장 삼아 전쟁을 치릅니다. 그 중심 갈등 속에서도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는 갈등 속에서도 공존의 길을 찾아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이 메시지의 핵심에는 생물학자 야콥 폰 웩스쿨의 ‘움벨트’ 개념이 있습니다. 움벨트는 모든 생명체가 각자의 주관적 감각으로 구성한 독자적인 세계, 즉 ‘감각의 비눗방울’을 의미합니다. 애니메이션은 이 서로 다른 비눗방울들이 처절하게 충돌할 때 발생하는 비극에 대한 거대한 알레고리를 보여줍니다.

현대의 전장 - 기만적인 생태통로
애니메이션 속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장은 숲속에서 현대의 도로 위, ‘생태통로’라는 경계로 옮겨왔을 뿐입니다.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전국 생태통로의 95%가 부실 판정을 받았고, 서울의 경우 전량 부실로 드러나며 도시 생태축의 연결이 허상이었음을 증명했습니다. 동물의 움벨트가 고려되지 않은 설계는 생명의 다리를 로드킬로 유도하는 ‘죽음의 깔대기’로 전락시켰습니다.

버티고개의 미시적 단절
대상지는 일제강점기 도로 개발로 남산과 매봉산이 분리된 이래, 현재는 호텔과 고밀도 주거단지 사이에 끼인 ‘모래시계형 병목 구간’이 되었습니다. 2012년 조성된 연결 통로는 동물의 움벨트를 배제한 채 인간과 동물의 동선이 교차하며 과도한 간섭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기능 없는 루버와 철조망은 물리적 연결에도 불구하고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하며 생태적 흐름을 단절시키고 있습니다. 이 실패한 인프라를 치유하기 위한 거시적 리모델링 원칙을 제안합니다.

공유된 움벨트
기존의 리모델링 방식은 물리적 영역을 평면적으로 분리하는 데 그쳐, '움벨트'를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공존이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되, 생존의 핵심 고리를 통해 유연하게 교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매봉산의 생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활동과 번식이 절정에 달하는 2월부터 7월 사이에 동물의 생존을 결정짓는 가장 절실한 기제는 바로 '수분 보충'입니다.
평균 4시간마다 물을 찾아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이 생존 리듬은, 생태통로가 단순히 '길'이 아닌 '생명 유지의 거점'이 되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생존의 갈증이 가리키는 곳에 과거 인간과 동물이 함께 목을 축이던 '버티약수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이곳은 완전히 메말라 '결핍의 현장'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저는 이 단절된 생명의 고리를 다시 잇기 위해, 빗물을 생존의 에너지로 환하는 '7단계 빗물 순환 시스템'을 제안합니다.

감각의 중재 - A 영역
A 영역의 수공간은 동물의 갈증 해소를 넘어, 인간에게는 보이지 않는 생명을 느끼는 명상 공간이 됩니다. 동물이 물을 마실 때와 움직임으로 발생하는 작은 파동이 홈통을 통해 아래로 떨어지고, 하부 동 공간에서 인간은 이 낙수 소리를 들으며 청각적으로 동물의 기척을 경험합니다.

마을의 풍경 - B 영역
B 영역은 지역 주민과 관람객을 위한 성찰의 공간입니다. 이전에 제거했던 철재프레임 위에 등산객 동선을 2.1m 폭으로 계획하고 중심에는 휴게 시설을 마련했습니다. 원기둥 형태의 관람실은 외부 셔팅 처리를 통해 시각적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서도, 인간이 내부를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특히 낮에는 실외 조도가 실내보다 밝은 광학적 특성을 이용해 외부 시선을 차단하며, 자칫 어두울 수 있는 내부는 인공조명 대신 자연 채광으로 해결합니다. 반사판으로 빛을 응집시킨 뒤 폴리카보네이트를 통해 상부와 내부를 은은하게 밝힐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살아라, 그대는 아름답다
인간의 욕심으로 동물의 서식 영역은 축소되었고, 재개발로 그들의 용달샘마저 매말랐습니다. 결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았던 두 세계를 '갈증'이라는 공통의 움벨트로 엮어내어, 단절을 넘어선 새로운 공생의 지평을 제안합니다. 또한 현재 생태통로에 대한 예산이 점차 감소하고 있는 시점에, 생태통로는 자생적으로 운영 자금을 보충해야만 지속 가능한 풍경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 매스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생태 필터 교체 비용이나 생태통로 도슨트 프로그램 운영비로 활용되길 바랍니다. 이로써 실패했던 생태통로는 인간과 동물 모두가 각자의 영역을 존중받으며 공존하는 진정한 만남의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 이곳은 무심했던 야생동물의 존재를 깊이 성찰하게 하며,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변화하는 치유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입선 - ( ) MATE

박준혁, 류정민, 방수혁(한양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우리는 각자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서로 다르다. 관계를 맺는 방식, 생활의 리듬, 공간을 사용하는 태도는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나 현대의 주거 형태, 특히 대학 기숙사는 이러한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기숙사가 가진 효율과 관리 중심의 구조는 거주를 표준화된 방식으로 제한하며, 개인의 삶은 그 공간에 맞춰 조정된다. 그렇다면 학생들 각자가 원하는 삶이 구현되기 위해, 기숙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현대 대학 기숙사의 공간은 효율과 관리의 논리를 기반으로 조직된다. 동일한 크기의 유닛이 반복되고, 중앙 복도를 따라 구획된 중복도 구조는 거주를 하나의 규격화된 시스템으로 환원시킨다. 이러한 방식은 기능적으로는 명확하지만, 관계와 경험의 측면에서는 제한적인 환경을 만든다.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관계의 밀도를 가진 개인들은 ‘룸메이트’라는 단일한 관계에 머무르며, 그 외의 다양한 교류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차단된다.
성동구 사근동 일대의 기숙사는 이러한 한계를 가장 잘 보여주며, 이를 도시적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킨다. 반복되는 평면과 통제 중심의 동선 체계는 내부 관계를 제한할 뿐 아니라, 대규모 건물의 삽입을 통해 기존 마을과 청계천을 연결하던 흐름을 단절시킨다. 기숙사는 도시 속에 스며드는 공간이 아니라 외부와 분리된 고립된 시설로 작동하며, 물리적·사회적 단절을 동시에 발생시킨다.
이러한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 공간은 고정된 형태가 아닌 변화 가능한 시스템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연속적이고 중첩적인 관계를 형성하던 기존의 아날로그적 방식에서 벗어나, 반복 가능한 단위와 명확한 규칙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적 사고를 도입하여 구조를 분해하고 재조합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 기숙사가 가지는 동일한 형태의 유닛을 하나의 평을 기준으로 6등분하여 최소 단위로 나누고, 이를 독립적인 요소로 재정의함으로써 고정된 평면 체계를 해체한다. 분해된 유닛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되며 새로운 공간을 형성하고, 동일한 반복이 아닌 가변적인 구조를 만들어낸다. 또한 이러한 유닛의 결합은 수평적 확장에 그치지 않고, 슬라브를 추가하고 수직 및 원형 계단을 삽입함으로써 수직적 확장으로 이어진다. 이를 통해 각 유닛과 공간들은 입체적으로 연결되며, 단일 평면에 제한되지 않는 보다 유동적인 공간 구조가 형성된다.
공간 구성 또한 기존의 선형 구조에서 벗어난다. 단일 복도 중심의 동선은 해체되고, 다양한 경로가 교차하는 네트워크형 흐름이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유닛 사이에 형성되는 ‘사이 공간’은 개인 공간과 공유 공간을 연결하며, 다양한 활동과 관계가 발생하는 장으로 작동한다. 이는 명확히 구획된 공간이 아닌 흐름과 관계가 중첩되는 새로운 공간 경험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유연한 구조를 더욱 효율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프리패브리케이션 방식을 설계했다. 이를 통해 생산된 모듈은 현장에서 조립과 해체가 가능하며, 기숙사 내부뿐 아니라 외부 공간까지 확장되어 필요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유연하게 구성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이는 건축을 완결된 결과물이 아닌,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재구성되는 과정으로 전환시킨다.
이러한 시스템은 건물 내부에 머무르지 않고 사근동 전체로 확장된다. 프리패브리케이션 방식을 통해 생산된 모듈은 기숙사의 경계를 넘어 마을의 빈 공간과 결합하며 새로운 거점으로 작동한다. 기존 기숙사가 하나의 완결된 덩어리였다면, 이 시스템은 분해된 유닛이 주변으로 확장되며 도시와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사근동의 좁은 골목과 불규칙한 필지 사이에 존재하는 자투리 공간들은 이러한 모듈 시스템을 통해 유연하게 점유되며, 휴식과 교류 등 다양한 활동을 담는 공간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공간들은 마을 곳곳에 분산되어 새로운 활동의 거점을 형성하고, 기숙사와 마을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한다. 이를 통해 단절되었던 마을과 기숙사, 청계천의 흐름은 다시 이어지며, 프리패브리케이션 시스템은 공간의 도시적 확장과 관계의 재구성을 가능하게 하는 전략으로 작동한다.
 

입선 - 여전히, 나의 곁에

오차연, 신성현(인하대학교 건축학과)

기다리던 방학, 평온한 일상을 깨는 친구의 갑작스러운 비보였다. 고요한 운동장에 울려 퍼지던 유가족의 처절한 통곡 소리는 한 사람이 살아온 삶의 온도를 증명하고 있었다. 타인의 슬픔을 통해 그를 기억하던 순간, “나의 삶도 누군가의 가슴에 이토록 깊은 기억을 남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화살처럼 돌아왔다.
하지만 오늘날 도시는 효율과 위생을 이유로 인간의 가장 본질적이고 공통된 경험인 ‘죽음’을 외곽으로 추방했다. 일상에서 죽음이 사라지자 우리는 타인의 상실과 삶의 유한함에 무감각해졌고, 이는 결국 구성원 간의 심리적 단절과 각자도생의 사회를 낳았다. '여전히, 나의 곁에'는 이처럼 도시 밖으로 밀려난 죽음을 다시 삶의 한복판으로 소환하여, 무너진 연대를 회복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수목장’이라는 추모 방식을 도심 공원에 적용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점조직처럼 펼쳐진 나무들로 이루어진 ‘죽음의 바탕(Field)’과 일상의 행위를 담아내는 ‘일상의 형상(Figure)’을 결합하는 방식이다. 이 중첩된 풍경 속에서 건축물인 형상은 슬픔을 잠시 내려놓는 거점이 되고, 수목인 바탕은 삶의 유한함과 자연의 순환을 감각하게 하는 깊이 있는 조경이 되어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한다.
프로젝트는 수목장이라는 추모 방식의 본질을 재정의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기존의 묘지가 땅 위로 솟아오른 ‘기념비’라면, 나무는 그늘과 공간을 내어주는 ‘안식처’다. 대지를 완만하게 덜어내어 추모객이 자연스럽게 나무의 품 안으로 걸어 들어가게 함으로써, 나무 한 그루를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내어주는 가장 작은 단위의 건축이자 다정한 피난처로 구축했다.
이곳의 나무는 지역 주민에게는 공공의 ‘풍경’이지만, 유족에게는 고인의 삶이 투영된 사적인 ‘인격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이 상반된 두 관점이 충돌 없이 하나의 숲에서 공존하도록 32종의 나무를 두 가지 기준으로 분류했다. 사계절 내내 일정한 경관을 유지하기 위한 ‘시간의 풍경’, 그리고 수목의 제원(수관 반지름과 지하고)을 회귀 분석하여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유효 하부 공간을 위계화한 ‘공간의 깊이’다. 이 두 기준을 교차 배치하고 추모객이 선택한 고유한 나무 코드를 결합함으로써, 획일화된 묘역이 아닌 우연과 필연이 섞인 자연스러운 숲의 질서를 완성했다.
이러한 공간이 놓일 최적의 대상지로 동네 한복판에 위치한 ‘보육원’을 택했다. 물리적으로는 도심 중심에 있지만 높은 담장에 둘러싸여 도시의 흐름을 막는 고립된 섬과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폐쇄적인 담장 안의 건물들은 경사지의 등고에 맞춰 유기적으로 안착해 있었고, 이는 죽음의 바탕 위에 흩뿌려진 일상의 형상이라는 개념과 완벽하게 맞닿아 있었다.
이에 기존 보육원 건물군을 전면 철거하는 대신, 도시와의 소통을 가로막던 요소들만 과감히 덜어내는 감산의 방식을 취했다. 남겨진 건물의 물리적 골격은 유지한 채 추모객의 쉼터이자 주민의 커뮤니티 거점으로 치환하여, 사유화되었던 공간을 공공의 영역으로 환원했다. 예컨대 본관 건물은 1층 벽을 개방하여 숲의 흐름을 잇고 다층적인 접근을 유도했으며, 아이들의 추억이 담긴 미끄럼틀 등의 오브제를 보존하여 장소의 기억을 잇는 매개체로 삼았다.
리모델링된 건물들과 새롭게 조성된 수목의 관계는 지형에 순응하여 건축물을 겸허히 앉히는 한국 전통 정원의 미학과 닮아있다. 숲속에 무심한 듯 놓인 이 장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유연하게 허물며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새로운 풍경을 구축한다. 이곳에서 유가족에게 소중한 이는 나무가 되어 곁에 남고, 주민들은 일상 속에서 이웃의 기억이 깃든 수목을 마주하며 보이지 않는 정서적 연대를 맺는다.
건축적으로 이는 무색무취한 공공의 숲에 개인의 서사를 입히는 ‘약한 사유화’의 시도다. 사적 공간을 공공에 개방하는 기존의 방식과 반대로, 익명의 공공 공간에 개인의 애착을 결합함으로써 도시 구성원들은 이웃과의 유대감과 우리가 사는 공간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비로소 공유하게 될 것이다.
이 땅은 더 이상 고립된 섬이 아니다. 개인의 기억이 깃든 나무와 공공의 일상이 담긴 건축이 경계 없이 어우러지는 곳. '여전히, 나의 곁에'는 가장 개인적인 추모가 가장 공적인 도시 풍경이 되는 새로운 유형의 도심형 수목장 공원이다.
 

입선 - 지붕이 주는 기쁨

백민서, 염선웅(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지붕이 주는 기쁨_ 일상의 접점
우리에게 지붕은 어떤 의미인가? 마을의 고목, 캠핑 천막, 여름날의 파라솔과 시장의 어닝, 그리고 한옥의 툇마루까지. 지붕은 담담하게 일상에 스며들어 '기쁨'을 주는 존재다. 우리는 지붕을 단순히 건물을 덮는 덮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접점을 만드는 공간으로 재정의했다. 시점에 따라 처마가 되기도, 천장이 되기도 하는 이 감각적인 공간은 도심의 밀도에 밀려 점차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지붕 아래에서 서로 노출되고, 눈치 보지 않으며, 목적 없는 우연한 만남이 일어나는 세상을 꿈꾼다.

서계동 이야기
서울역 뒷편 서계동은 과거 남대문과 소통하던 봉제 산업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서울역과 서울로의 등장으로 교통 흐름이 바뀌며 기존의 맥락이 끊겼고, 현재는 노후 주택과 빌라가 밀집된 곳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봉제 공장과 게스트하우스가 많고, 거리에 사람들의 삶이 짙게 묻어난다. 주민들은 화분, 배수구, 우편함 위에 조각난 지붕들을 덧대며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조각난 지붕들에서 동네의 공동성을 회복할 가능성을 보았다.

지붕이 만든 새로운 공간
  • 막다른 골목길 - 골목을 덮는 지붕: 서계동의 골목 사이, 5개의 집만이 공유하는 나대지와 골목길을 발견했다. 우리는 이 막다른 길에 목재와 철제 프레임, 투명 지붕이 중첩된 새로운 구조물을 제안한다. 기존의 나무를 품으며 골목을 덮는 이 지붕은 결구 방식으로 엮여 있으며, 그 아래 평상에서는 두 지붕이 만드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 슈퍼 플랫폼 - 동네 거점의 재구성: 동네의 터줏대감인 '개미슈퍼'는 주민들의 주요 거점이다. 봉제 배달과 택배가 빈번한 지역 특성을 고려해, 슈퍼와 택배 보관소, 휴게 공간이 결합된 '슈퍼 플랫폼'을 제안한다. 틀어진 프레임의 새로운 지붕 틀은 기존 공간에 유연하게 덧붙여지며, 향후 다양한 장치들이 추가될 수 있는 확장성을 가진다.
  • 필로티의 재발견 - 주차장에서 테라스로: 경사로 인해 주거 세대 사이에 끼어 있는 필로티 주차장은 전망과 개방감을 동시에 갖춘 특별한 공간이다. 이곳에 건물과 분리된 목구조 프레임을 삽입한다. 이 프레임은 스스로 구조체 역할을 하며 어두운 주차장에 간접등을 형성하고, 주민들을 위한 테라스 공간을 더해 공간의 가치를 높인다.
  • 만리시장 뒷골목 - 봉제 브릿지의 확장: 만리시장 뒷골목, 주차장과 봉제공장의 프로그램이 혼재된 골목에 주목했다. 그레이팅 소재의 브릿지를 설치해 골목의 채광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봉제공장 간의 연결성을 확보한다. 이 브릿지는 상부의 생활감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지붕'이 되어, 삭막했던 주차장 골목을 정겨운 길로 변화시킨다.

우리 어떡해_ 우리 삶의 모양, 그리고 서계동
서계동 같은 옛 동네는 너와 나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 모호한 경계에 들어서는 크고 작은 지붕들은 '나'와 '너'가 '우리'가 되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정자에서 바둑을 두는 노인들, 슈퍼 앞의 휴식, 필로티 아래의 바자회, 그리고 브릿지 위에서 안부를 묻는 봉제사들까지. 주민들의 손길을 거치며 고쳐지고 덧붙여질 이 지붕 아래 공간들이, 개인의 영역을 넘어 풍성한 다수의 일상이 되길 바란다.
 

입선 - ‘잘’ 살기 위한 기계

김성원, 감대언, 김민경(부산대학교 건축학과)

‘잘’ 살기 위한 기계는 르 코르뷔지에가 말한 ‘주거는 살기 위한 기계’라는 명제를 오늘의 도시에서 다시 질문하는 데서 출발한다. 근대 주거는 효율과 표준화를 통해 개인의 쾌적성을 극대화했지만, 그 과정에서 내부 가로·옥상 정원처럼 ‘우리’를 가능하게 했던 공동의 층위는 점차 사라졌다. 개인의 삶은 다층화되고 다채로워졌는데, 도시 공간은 여전히 기능과 효율에 의해 단층화되어 개인과 개인이 자연스럽게 만날 구조가 부족해졌다. 우리는 이 결핍을 ‘새로 짓기’로 해결하기보다, 도시 규칙이 필연적으로 남긴 잉여 공간을 전환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핵심 대상은 건축법상의 이격과 경사지 주거의 물리 조건이 만들어낸 주택 사이 ‘틈’이다. 본 제안에서 틈은 사람이 머무는 방이 아니라, 우리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시설(infrastructure)로 재정의된다. 반대로 옥상은 틈에서 준비된 생산과 보존의 과정이 합류해 ‘우리’의 장면이 드러나는 공유 평면이 된다. 즉 공간 전략은 단순하다. “틈은 기반시설, 옥상은 공동체적 장소.”
프로그램은 억지 이벤트가 아니라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개인마다 가장 다채롭게 변주되는 행위인 ‘식사’를 매개로 삼는다. 식사는 경작–보존–조리–식사의 연쇄를 포함하며, 이 연쇄를 틈-옥상 시스템으로 연결한다. 상부에서는 우수를 집수해 경작용수로 사용하고, 채광이 좋은 틈과 옥상에서는 잎 채소를 재배한다. 음지의 틈 하부에서는 균류 재배와 밀폐형 EM 발효를 통해 음식 부산물을 위생적으로 비료·발효액으로 전환해 다시 경작으로 환원한다. 이 과정은 개인의 선택으로 작동하지만, 결과는 옥상에서 가시화되어 자연스러운 겹침과 교환을 만든다. 공동체는 계획된 모임이 아니라, 같은 회로를 공유하며 생기는 생활의 결과로 형성된다.
대상지는 부산 산복마을이다. 산복마을은 개발 논리에서 비켜난 휴먼 스케일의 집합 주거이며, 경사·옹벽·계단·옥상이 반복되어 틈이 유형적으로 생성된다. 또한 산복도로를 따라 4–6채 단위의 블록이 연속되어 프로토타입의 점적 확산이 가능하다. 구축은 기존 건물에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계 시스템을 기본 구조로 사용한다. 비계는 조립·변형·해체가 가능한 가역적 재료로, 장치가 주민의 참여와 필요에 따라 동네 안에서 순환·확장되는 유연한 인프라가 된다.
결론적으로 본 프로젝트는 철거·재개발이 아닌, 도시가 남긴 ‘틈’을 생활 인프로 전환해 산복마을의 일상 리듬을 재조직하고, 4–6채 블록을 하나의 순환 단위로 설정해 점적으로 증식하는 도시적 확장 방식을 제안한다. 하나의 블록에서 성립한 순환과 공유는 인접 블록으로 연쇄적으로 연결되며, 산복도로 전반을 따라 작은 생산과 보존의 기반시설이 촘촘히 분포한 느슨한 네트워크 도시로 확장된다. 이는 ‘짓는 도시’가 아니라, 도시가 이미 갖고 있던 여백을 통해 돌아가는 도시를 만드는 재생의 전략이다.
 

입선 - 커피… 한 잔 할래요?

최형석, 김두겸, 이규현(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건축학전공)

나와 판타지: 일상의 잔여물에서 피어난 상상
가장 일상적이고 반복되는 모습이야말로 나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상태이다. 쓰레기통에 무심히 쌓인 플라스틱 컵들을 보며, 그 잔여물들이 정직하게 우리의 삶을 나타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커피가 있다. 버려진 컵 속에 나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듯, 커피는 어느새 나의 삶을 구조화하는 일상의 축이 되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커피는 나와 동떨어진 장소에서 생산과 가공의 과정을 거쳐 오직 '소비'의 순간만이 우리에게 도달한다. 하루의 여러 순간에 커피를 마시지만, 그 커피가 자라는 환경과 내가 살아가는 공간은 철저히 분리된 채 유지된다.
여기서 작은 판타지가 시작된다. '만약 커피가 내가 생활하는 공간 안에서 자란다면 어떨까?'. 흥미롭게도 커피나무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요구하는 18-24°C의 온도와 50-70%의 습도는 인간의 쾌적한 생활 환경과 충돌하지 않으며,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교차한다. 열매가 맺히고 익어가고 가공되는 과정이 일상의 풍경이 된다면, 커피는 더 이상 단순한 생산의 결과물이 아니라 나의 일상과 밀접하게 관계 맺는 생생한 삶의 한 장면이 될 것이다.

나에서 우리로: 취향이 모여 엮어내는 마을의 공정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열매를 수확한 시점부터 발효, 세척, 건조, 로스팅 등 복잡하고 여러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로 온다. 만약 나의 공간에서 커피를 직접 기르고자 하는 개인들이 모인다면 어떻게 될까? 대규모 산업 시설에서 조직되던 이 거대한 커피 공정을 거주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과 집의 크기'로 축소해 다시 배치해 볼 수 있다.
각 단계가 분리된 채 운영되던 공정들은 이제 생활의 범주 안으로 들어오며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가 된다. 누군가의 집 확장된 모듈에서는 커피나무가 자라고 , 마을의 커뮤니티 공간에서는 수확한 체리를 이웃과 함께 세척하고 발효시키며, 공유하는 옥상 썬룸은 커피를 말리는 훌륭한 건조장이 된다.
이러한 공정의 분산과 공유는 단순한 건축적 기능 배치를 넘어, 사람들의 관계 및 소통과 맞물리며 작동한다. 내가 기른 원두의 가공 과정을 이웃과 나누는 행위는 매일 반복되는 생활의 흐름 중 하나로 경험되며, 그 과정 속에서 서로의 취향과 삶의 태도가 겹쳐지며 새로운 일상적 장면을 형성한다.

마을과 도시: 잃어버린 공동체성의 회복
이러한 '커피 공정의 마을화'가 이루어지는 무대로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의 저층 주거지를 상상해 보았다. 이곳은 다가구 주택과 도시형 한옥들이 온전히 공존하며 골목을 중심으로 생활의 흐름이 이어지는 곳이다. 하지만 현대 도시의 많은 주거지가 그렇듯, 집집마다 쳐진 '담장'은 이웃 간의 교류를 줄여 마을을 정적으로 만들고 사잇공간을 버려지게 한다.
커피가 스며든 마을은 이 닫힌 구조를 다시 열어젖힌다. 주거 사이의 담장을 제거하여 충분한 사잇 공간을 확보하고 이를 공공 공간으로 환원한다. 기존 골목과 건물이 형성해 온 유기적인 공간 질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 위에 커피라는 일상의 행위를 새로운 층위로 덧입히는 방식이다. 담장이 허물어진 자리에는 이웃과 커피를 나누는 소규모 공유의 장이 열리고, 새로운 취미를 발견하는 교류의 공간이 점진적으로 마을 전반으로 확장된다.
결국 이 제안은 커피에서 출발했지만, 도시 속 단절된 사람과 공간의 관계를 다시 잇는 이야기다. 다양한 원두가 '블렌딩(Blending)'되어 커피의 맛이 풍부하고 깊어지듯, 파편화되었던 개인의 일상들이 '마을'이라는 공간 안에서 촘촘하게 엮일 때 , 비로소 우리는 잃어버린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모습을 다시 마주하게 될 것이다.
 

주제 글 1

우리 어떡해

제목에 담긴 난망한 상황은 그동안 막연히 혹은 당연하게 생각해 온 ‘우리’라는 개념에 대한 재고를 필요로 한다. 동시에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를 만들어 내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세상과 무관한 내적 완결성을 목표로 개인적인 삶에 매몰되어 각자도생의 사회가 되어버린 지금, 나로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되는 사회적 연결고리나 그 접점을 상실해 버린 것은 아닐까 싶은 의심도 든다. 어쩌면 근본적으로 ‘나’에 대한 사고조차 완전한 것이 아닐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나를 나로 만드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이번 작업은 스스로의 삶과 이야기를 돌보는 것에서 시작하길 권유한다. 무언가에 주의 깊다는 것이 돌봄의 시작이며 그 돌봄 없이는 애정이 생기지 않는다. 각자에 대한 애정의 시각으로 본인이 살고 싶은 삶의 방법과 형태를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상상해 보자. 개인은 홀로 완결될 수 없으므로 스스로를 들여다보면 부족한 능력에 대한 자각과 인지가 생기게 마련이며 자연스레 관심은 관계나 연대로 이어질 것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결국 ‘누구와 관계를 맺으며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에 다름 아니다. 집이라는 장소를 개인에 한정하지 않고 조금 더 확장하면 길, 동네, 도시가 되듯이 돌봄을 개인에 한정하지 않고 서로에게로 범위를 확장하면 관계 혹은 연대가 되는 것이다. 개인의 정체성에 기반하여 각자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느슨한 연대(혹은 연결, 유대, 관계 등등)의 공간을 희망해 본다.

합법과 제도를 넘어 숨 쉬는 도시

공간은 추상적이고 객관적인, 그리고 물리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관념적 빈자리를 칭한다. 반면 장소는 나를 둘러싼 환경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획득한 일종의 터전을 말한다. 앙리 르페브르가 ‘공간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행위와 사물, 환경이 어우러져 생산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생각한 공간은 장소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핵심은 ‘공간’이란 생활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며, 그에 대한 권리 또한 공간의 생산에 구체적이며 현실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통해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제도적 형식화가 필요한 것이냐는 별개의 문제이며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합법과 제도 바깥에도 도시는 숨을 쉰다. 도시를 만들고 구성하는 행위에서 중요한 건 법안을 충족하느냐 아니냐 라기 보다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만들고 싶어 하는 도시의 모습 그 자체라는 것이다.

불법에서 해법의 가능성을 찾은 토레 다비드의 거주자들, 무려 40km에 이르는 볼로냐의 포티코, 다가구(다세대) 주택의 계단실에 설치된 렉산 샷시 또는 방수를 위한 옥상의 경량 구조체와 골강판 겹지붕 같은 공간들은 법조문으로 성문화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무엇이 도시의 삶에 적절한지에 대한) 틈새의 감각을 절묘하게 보여주는 결과물들이다. 이러한 감각이야말로 삶의 터전을 공유하고 도시를 함께 만들어가는 근본적인 기초이다.

작고 사소한 건물(혹은 물건)이어도 그것이 도시에 놓이는 환경과 문맥, 그리고 역할에 따라 얼마든지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여기에서 건축(가)의 새로운 역할과 여러 가지 또 다른 가능성을 본다. 기발하고 번뜩이는 창조적 아이디어보다는 세심하고 주의 깊은 실천적인 제안이 필요한 시대이다.

- 심사위원 임태병(문도호제 대표)


주제 글 2

퍼블릭아트(공공예술)를 나는 장소, 시간, 사물, 사람을 ‘예술’로 매개해 정동을 발생시키는 일련의 활동과 그 결과로 이해한다. 그 속에서 예술기획자로서 내가 해온 역할은 관객·사용자·수용자·경험자들이 다양한 감각적·신체적·정서적 공명(resonance)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경험 디자이너’에 가깝다. 예술에서 건축으로 개념을 옮겨 보면, 광의의 건축 속 ‘공유’, ‘공동’, ‘연대’와 같은 수식어가 붙는 활동 역시, 공간과 시간을 가로지르며 ‘건축’을 매개로 사용자·수용자·경험자들의 심리적·신체적·정서적 연결을 만들어내는 경험 디자인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동’과 ‘공공’, 그리고 ‘우리’라는 개념을 타자나 별개의 무리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경험과 ‘남’의 경험이 대화와 리서치를 통해 교차하며 그 지점에서 드러나는 모순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러한 모호하고 모순적인 교차성을 즐거운 과제로 삼고, 내 경험과 생각의 조각들을 모아보는 연습, 그리고 도시 안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관찰하는 태도 역시 매우 중요하다.

‘우리 어떡해’라는 주제는,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가치와 체계가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의 삶 속에서, 표류하지 않도록 서로를 엮어주는 보이지 않는 ‘돌봄’의 건축적 가능성을 묻는 질문일지 모른다. 이는 땅속 균사체들이 나무의 뿌리를 따라 확장되며 우드 와이드 웹(wood-wide web)을 이루듯, 여러 층위에서 발생하는 ‘서로 돌봄’의 관계망이 우리 삶을 지탱할 물리적 구조를 상상하는 일이기도 하다.

돌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해 가족과 친구, 공동체로 확장되고, 더 나아가 동물과 식물, 그리고 우리의 삶의 근간인 땅까지 이어진다. 결국 우리는 거미줄처럼 얽힌 돌봄의 세계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집에서 키우는 식물을 돌보는 일이든, 공동 과제를 위해 잠시 꾸린 스터디 그룹이든, 길고양이의 물과 밥을 챙기는 동네 네트워크이든, 한 달에 한 번 줌으로 같은 책을 읽고 안부를 나누는 온라인 모임이든, 작은 텃밭을 함께 관리하는 공동 텃밭 모임이든 — 그 형태와 방식, 대상은 끝없이 다양하다.

보니 오라 셔크의 크로스로드 커뮤니티 – 더 팜(1974–1980)은 샌프란시스코의 고속도로 교각 아래 유휴지를 커뮤니티 가든으로 바꾸어, 주민들이 함께 가꾸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누릴 수 있게 했다. 베를린의 스튜디오 올라퍼 엘리아슨이 지속하고 있는 작업 키친(2005–)은 요리를 공동의 행위이자 감각적 경험으로 확장하여, 아티스트 겸 셰프 아사코 이와마와 베를린 인근의 여러 농장과의 협업을 통한 창의적 메뉴 개발, 구성원 간의 식사와 대화, 팝업 행사와 전시, 세미나 등을 진행한다. 이를 통해 예술을 매개로 기후 변화나 지속가능성 같은 사회적 의제를 사유하게 하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더 나아가 디지털 플랫폼 Local Dawgs는 금전적 거래 없이 주변 이웃 간 반려동물을 돌보며 신뢰 기반의 상호 돌봄 문화를 형성하는 시스템이다. 

이처럼 도시 안에서 상상할 수 있는 돌봄의 형태와 방식, 대상은 무수히 다양하다. 그리고 그 다양성이 넓어질수록 우리가 경험하는 삶과 공동체 속에서 진정한 공명이 발생할 가능성 또한 커진다.

- 심사위원 홍보라(팩토리2 디렉터)


주제 글 3

1. 나 어떡해

‘나는 어떤 모양으로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언뜻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하지만, 막상 건축가로서 이 질문을 대한다면 술술 대답하기 쉽지 않다. 우린 이 질문을 보통 첫 주택 설계를 하게 되었을 때 마주하게 된다. 조금 부끄럽더라도 대담하게 답하고 난 뒤, 점점 나의 삶보다는 내가 속한 사회를 위해 설계하게 되고, 건축가로 성숙해졌을 때는 타인을 위한 삶을 설계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정작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양을 잊고 살기도 한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장소, 문화, 기후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마을과 도시들이 비슷한 양태를 띄게 되고 수천 년간 이어온 다양한 삶의 모습은 잊혀졌다. 이번 기회에 ‘나는 어떤 모양으로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인간은 사회와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내 삶의 모양이 모여서 도시의 모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양성의 가치가 커져가는 사회이지만, 과연 건축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는가?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라는 개념이 주는 위화감을 마주하고, 가장 개인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도시로 나아가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 때다.

집은 사람의 삶과 시대의 모습을 그리는 존재이고, 집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평행하게 이어져 왔다. 우리가 그리는 집의 평면이 지금의 시대를 기록하는 기록물이 된다. 2025년의 시대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상상하는 미래, “인간의 상상력의 크기를 느끼게 하는 존재로서의 집,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자체가 건축으로 되어 있는 듯한 집”1)은 어떤 모습일까.

2. 우리 어떡해

‘우리는 어떤 모양으로 함께 살 수 있을까?’ 

‘우리’라는 개념은 ‘나’라는 단일체의 복수형이다. 개개인의 단일체성이 사라진 하나의 공동체가 아니라, 오히려 개별성이 확장되거나 증폭되는 복수화를 거쳐서 더 강화된 상태로 이해해야 한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양이 마을로 확장될 수도 있고, 나와 비슷한 삶의 모양들이 겹쳐있을 수도 있고, 혹은 오히려 서로 다른 모양들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우리가 될 때 급작스러운 일반화로 인한 중성화의 우를 범하지 말고, 개개인의 성격이 오히려 더 강화되어 새로운 우리의 형태, 나는 누구와 어떤 모양으로 살고 싶은가를 상상해보았으면 한다.

건축은 대지 안에서 완결될 수 있지만, 지어지는 순간 마을에 속하는 존재로서 마을의 일부가 된다. 거주환경은 건축뿐 아니라 그가 속한 거리와 마을 등의 환경 전체에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의 구조가 도시의 구조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서로의 구조를 드로잉해보고 이를 접속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단일체이면서도 집합체적인 성격을 가진, 집과 마을의 중간적인 존재로서의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3. 나와 우리, 건축과 도시의 상호참조구조

‘건축이 도시를 만드는가’, ‘도시가 건축을 만드는가’라는 인과관계의 딜레마로부터 나와 우리의 상호 관계성을 강화하는 방법을 상상해 본다. 도시의 구조가 건축의 구조가 되고, 이로 인해 구축된 건축이 다시 도시의 일부가 되는 순환적이고 상호교환적인 풍경을 건축하는 것을 통해,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양이 우리가 살고 싶은 모양과 이어진다. 

너와 내 삶의 모양들을 인류라는 보편적 관점 안에 적당히 섞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원하는 삶의 모양을 궁극적으로 반영한 건축을 생각해보고, 이 건축이 도시에 놓였을 때, 우리는 어떤 모양으로 살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다.

“집이 개인적인 공간으로서 ‘나’를 확인하게 하는 곳이라면, 건축은 ‘우리’를 만들고 확인하는 곳이다.”2)

- 심사위원 이해든, 최재필(오헤제 건축 공동대표)

 

1) 류에 니시자와, 「家の建築」
2) 후지모리 데루노부, 「인문학으로 읽는 건축이야기」


주제 글 4

우린 어떡해?

고슬고슬해진 ‘우리’

“나는 오딘의 아들, 아스가르드의 왕자 토르다.”

“어데 최씹니꺼? 경주최씨 충렬공파 39대손, 현자 돌림!”

과거에 ‘나’를 ‘우리’로 뭉치는 접착제는 혈연·지연·학연이었다. 내가 선택할 수 없고, 한 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는 힘. 그렇게 가장 강력한 ‘우리’는 종친회·동창회·향우회였다. 하지만 가족·고향·동문의 점성이 옅어지면서, ‘우리’의 성격이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개인이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취향 커뮤니티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달라진 오늘날 ‘우리’의 크기와 찰기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전통적 커뮤니티는 클수록 강했기에, ‘찐득한 찰기’를 더해 덩어리를 불려가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반면, 취향 커뮤니티는 알갱이가 작은 ‘‘고슬고슬한’ 커뮤니티다. 취향이 세분화될수록 알갱이의 크기는 더 잘게 쪼개진다. ‘우리 어떡해’를 논하기 전에 각자의 ‘우리’를 감각해 보면 어떨까. 당신의 ‘우리’ 범위는 누구까지인가? 당신이 감각하는 ‘우리’의 적당한 점도는 얼만큼인가?

띠부띠부 부족

우리가 세계화의 반환점을 돌아 ‘부족화’로 되돌아간다는 가설을 세워보자. 돌아온 부족민은 부족을 선택하고 떠날 수 있는 자기주도적 선택권이 생겼다. 예전엔 부족에게 버려지면 살아남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부족을 떠나거나 새로운 부족에 들어가는 일이 한결 쉬워졌다. 이제 소속감을 자연수로 고정하지 않고, 소수로 분할하기도 한다. 월, 화, 수 디자인 업무는 수원에서(0.2), 목, 금의 목공방 일은 대전에서(0.5), 여름 한 달 트레일러닝 크루는 장수에서(0.3) 이어가는 식이다. 취향과 관심사의 변화에 따라 커뮤니티는 언제든 붙었다가 떨어지고 분할되거나 재편된다.

누구도 겪어보지 않은 미래 커뮤니티에 대한 여러분만의 가설도 궁금하다. 다만 상상 속 가설의 하중을 견디려면 든든한 리서치가 받쳐줘야 한다. 그 기단 위에 흥미로운 디자인이 올라서야 근거기반 디자인(Evidence-Based Design)으로 현실에 발을 디딜 수 있다.

짓지 않는 시대

고향이 아니라 취향을 중심으로 모이는 새로운 ‘우리’는 과거의 ‘우리’보다 훨씬 작고, 한층 가볍다. ‘우리’가 작고 가벼워지면 건축도 작고 가벼워진다. 건물의 크기는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총합과 같다. 고슬고슬한 우리는 피라미드를 원하지 않는다. 건물에 쏟는 돈은 가치관의 지속성과 비례한다. 이동성이 커진 부족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가볍고 산뜻한 건축을 원한다.

커뮤니티가 고슬고슬하고 띠부해질수록 큰 건물, 새 건물의 수요는 줄어든다. 더구나 인구는 줄고 빈집은 늘고 있다. 지방도시에서는 이미 짓지 않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성장도시 시대에서는 가장 먼저 성장하는 서울이 논의를 주도했다면, 축소도시 시대에는 가장 먼저 축소하는 중소도시가 논의를 주도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지방도시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축소를 경험하고 있는 글로벌 선두주자 지방도시들은 “우리 어떡해?”하며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적정’ 건축을 향하여

작고 가벼워진 건축은 의도적으로 힘을 뺀 적정 건축을 향해 간다. 최근의 프리츠커상 흐름이 말해주듯, 크기와 화려함은 건축에서 더 이상 최우선순위가 아니다. 적정건축은 스트리밍 시대의 음악과 닮아 있다. LP를 사고 정성껏 판을 닦아 음악을 듣던 시대에서, 일상의 일부로 음악이 스며드는 스트리밍 시대로 넘어왔다. 일상 곳곳에서 음악과 동행하자니, 내지르는 고음과 진한 소몰이 창법은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 대신 속삭이듯 잔잔하고 힘을 뺀 가창이 선호된다.

건축에서도 화려한 조형의 월드투어 콘서트 같은 건축과 더불어, 일상 곳곳에서 만나는 잔잔하고 힘을 뺀 건축도 필요하다. 건축의 대상도 지금까지 건축가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상가, 인테리어, 리노베이션, 가로, 소공원, 스트리트 퍼니처(street furniture) 혹은 설계를 넘어 시공, 브랜딩, 공간운영까지 확장될 수 있다. 이는 건축이 사람들의 일상에 몇 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다. 

렘 콜하스의 S, M, L, XL에 포함되지 않았던 XS 건축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환경에 부하를 주는 화려한 건축이 아니라, 회수 가능한 초기 투자비용 안에서 실현할 수 있는 저예산 적정건축의 새로운 지도는 어떻게 그려질까?

우린 어떡해?

“우리 어떡해?”라는 묵직한 질문에 폼나는 비전을 제시하기 전에, 막상 우리 건축가들은 앞으로 어떡해야 하나를 고민해야 하는 건 아닐까? ‘우리’의 의미가 바뀌고 ‘짓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는 지금, 건축가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나? 삶의 방식과 커뮤니티가 변하는 만큼 건축가의 역할 또한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세상을 리드하며 해답을 내려주는 영웅적 건축가보다, 일상과 고락을 함께하는 다정한 ‘동네 건축가’가 필요한 시대다.

“건축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건축가를 포기했다”고 말한 도쿄 R부동산의 하야시 아쓰미 대표, 『건축하지 않는 건축가』를 쓴 마츠무라 준 박사는 건축가를 포기하지도 건축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근대 이후 고정된 ‘건축’, ‘건축가’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확장시킬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건축가들, ‘우린’ 어떡해야 할까?

- 심사위원 윤주선(충남대학교 교수)


심사위원 프로필

임태병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몇 곳의 설계사무소와 인테리어 사무실, 그리고 SAAI건축의 공동 대표를 거쳐 2016년 독립했다. 현재 문도호제 대표로 건축가이자 기획자이며 운영자다. 문도호제는 짓기와 만들기를 넘어 조율하기(기획, 운영, 관리)까지를 건축가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싶어 하는 사무소로 이를 위해 일반적인 건축설계사무소의 시스템이 아닌 인테리어, 시공, 그래픽, F&B, 부동산 운영 등을 담당하는 각각의 팀과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B-hind, D’avant을 비롯한 홍대 지역의 몇몇 카페를 직접 디자인, 운영했고, 이천 SKMS 연구소, 메종 키티버니포니, A.P.C. 홍대, KWANI 플래그십 스토어, 라이브러리 티티섬, 리브랩 등의 건축 작업이 있다. 건국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겸임교수를 거쳐 지금은 PaTI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2022 Korea House Vision의 기획위원이기도 했다. 해방촌 해방구, 풍년빌라, 여인숙, 신촌 문화관, 이미집, 현관방의 집 등 몇 개의 작업을 통해 ‘중간주거’라는 가볍고 유연한 새로운 주거 관련 작업을 진행 중이다.
 

홍보라

팩토리2 디렉터, 예술기획자. 경복궁 서쪽에서 작은 뾰족한 예술 공간이자 기획 사무소인 팩토리2를 운영하며, 도시·사람·예술의 역동적 관계를 기반으로 국내외 다양한 퍼블릭 아트와 프로젝트를 기획해 왔다. 장르 간 경계를 선이 아닌 넓은 지대로 확장하고자 연구·기획·제작·교육 등 예술과 문화 전반에서 경계 없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에서 예술행정을 전공하고, 시카고시 문화부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퍼블릭 아트 분야에서는 평창문화올림픽 공공미술 프로젝트 Signal Light. Connected, 창덕궁 후원 내 비밀의 소리, 함양 상림숲에서의 라운드프로젝트 등의 아트디렉터를 맡았다. 전시 기획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디자인 기획전 <미각의 미감>, 헬싱키디자인미술관 <Wirkkala Revisited>, 문화역서울284 디자인 특별기획전 <인생사용법>, 한국국제교류재단 북유럽디자인 특별전 <노르딕데이> 등을 기획했다. 또, 21회 밀라노트리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으로 <Making is Thinking is Making>을 기획했다. 
 

이해든, 최재필

단국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사사무소 사무소효자동을 거쳐, 동경예술대학 미술연구과 건축전공 석사과정을 이누이 쿠미코 연구실, 톰 헤네간 연구실에서 수료했다. 2016년 동경예술대학 재학 중 「오헤제 건축」을 설립하여, 2017년부터 서울에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주요수상력은 신건축 국제주택설계경기 2007 2등, 동경예술대학 요시다 이소야 수료제작상, 도쿄건축컬렉션 요코미조 마코토상, 일본 SD Review 2017 입선 - 목천의 「세 집」 등이 있다.
 

윤주선

건축의 업역을 확장하는 동네 건축가. 건축·도시의 재생과 건축가 개념의 재구축에 관심이 있다. 연구자로서는 ‘보는 연구’가 아닌 ‘해보는 연구’를 지향한다. 2018년부터 ‘잇는 건축가’를 다루는 건축외계(建築外界) 세미나를, 2019년부터 ‘짓는 건축가’를 다루는 DIT(Do It Together) 워크숍을 기획해왔다. 현재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행동하는 도시건축 집단 ‘우당탕탕 Lab’을 이끌고 있다. 동네의 창의적 메이커, 공간 운영자를 존중하고 그들과의 협업을 통해 크고 작은 도시 공간환경의 개선을 추구한다. 공(公)·민(民) ·학(学)연계형 지역관리회사, 택티컬 어바니즘, DIT마을재생, PPP 공공건축 재생, Walkable City, Placemaking 등의 분야에서 ‘설레는 선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현장 연구로 군산 영화타운 재생 초기 기획, 군산회관 PPP형 재생 기획, DIT 공간 재생 시리즈, 대전 동네 건축가 프로젝트 등이 있다.
 


일정

  • 사전포럼: 2025년 11월 4일(화), 6일(목), 11일(화) / 상세 내용은 뉴스란의 공지 확인
  • 주제설명회: 2025년 11월 19일(수) 오후 5시 /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 참가신청: 2025년 11월 3일(월) ~ 2026년 1월 2일(금)
  • 과제제출: 2026년 1월 12일(월) ~ 15일(목)
  • 1차심사기간: 2026년 1월 19일(월) ~ 2월 12일(목)
  • 1차심사 결과발표: 2026년 2월 13일(금)
  • 최종공개심사: 2026년 3월 7일(토) 예정
  • 일정 변경 시, 웹사이트 뉴스란과 재단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지합니다.

설계 과제

‘우리 어떡해’를 어떻게 만들까?

각자도생의 사회 속에서 ‘우리’를 말하기 위하여, 내가 살고 싶은 삶을 구체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다음, 나와 비슷하고도 다른 개개인이 모인 ‘우리’를 구체적으로 상정한다. 나와 우리의 삶을 연결하는 과정을 건축적 판타지와 도시 리서치를 결합하여 표현한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가 실현된 장면 속에서 건축과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상상해 본다. 이로써 느슨한 연결망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의 공간을 제안한다. 

건축적 판타지

건축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 공간의 개념을 상상한 형태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건축적 판타지는 내가 원하는 것이 구체적일 때 형태화될 수 있으며, 나의 상상을 건축 요소로 치환한 결과물이다. 

도시 리서치

도시 리서치는 나와 우리를 잇기 위해, 나의 삶이 놓이는 도시의 구조를 파악하는 과정이다. 길고양이의 물과 밥을 챙기는 동네 네트워크를 예로 든다면, 먼저 길고양이의 삶을 구성하는 도시의 구조를 파악할 것이다. 고양이의 식당 인프라 조사, 그 식사를 챙기는 사람들의 삶의 모양, 이들이 도시 안에서 공유하는 공간 구조의 특징이 모여 공동성(共同性)을 가진 장소가 만들어진다.
건축을 구성하는 요소는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에도 동일하게 존재한다. 도시의 공간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전체의 풍경을 부분의 요소로 해체하여, 각 요소를 그려본다. 나의 계단과 고양이의 계단과 우리의 계단이 결합한 건축과 도시는 어떤 모습이 될까?

과제

이번 학생건축상 과제는 3단계로 구성되며, 각자의 해석과 자유로운 시도를 환영한다.

1.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양
  • 건축의 주체로 특정 대상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나’로부터 출발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습관이나 취미 등 무엇으로부터 시작해도 상관없다. 스스로를 주의 깊게 관찰한 것에서 출발한다.
  • 내가 살고 있는 삶의 모양이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양을 상상하는 것이며, 건축적이고 구체적인 판타지에 몰두한다. 이를 토대로 내 삶의 모양이 공간으로 구체화된 건축적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2. 우리의 삶으로 확장
  •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양이 동네에 놓였을 때, 이 모양과 성격으로 단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누구와 어떻게 복수화(複數化)되는가, 내 삶의 형태가 우리로 확장되며 다양해지는 과정이 되는가를 생각하고 그 접점을 계획한다.
  • 우리라는 대상은 ‘나를 포함한’ 가상의 대상이다. 우리의 삶은 내 삶의 모양과 비슷할 수도, 다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함께 존재하면서 상호보완하는 공동의 감각, 공동성(共同性, common)을 가지는 것이다.
  • 이 공동성을 건축화하기 위하여,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모양을 구성하는 공간적 구조 드로잉과,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이 놓여지는 도시의 공간적 구조 드로잉을 작성하고 서로를 연결한다. 즉, 1번 단계에서 구체화한 건축적 아이디어가 도시 공간에 적용된 결과물을 작성한다.

3. 나와 우리, 집-건축-마을-도시 간의 관계를 건축적으로 실현
  • 최종적으로 이 프로젝트의 지속성과 영향력을 염두에 둔 결과물을 작성한다. 
  • 판타지 & 리서치 드로잉(2번 결과물)의 구체적인 장면, 평면 등 건축적인 표현 방식을 포함한다. 이때, 스케일이나 용도에 구애받지 않는다.
  • 기존 법규와 제도 바깥의 가능성을 제시해도 좋다. 

* 이번 학생건축상은 섬세한 관찰, 리서치의 리얼리티, 깊이 있는 사고 과정을 가치 있게 평가할 것이다. 
 

과제 제출

제출물

  • 가로 방향 슬라이드 최대 30매
    • 제출물 A3 비율(가로 방향) 적용.
    • AI 생성 이미지 사용은 가급적 지양하나, 작업 속에서 AI를 활용해야 하는 근거와 이유가 명확할 경우 AI 생성 이미지임을 밝히고 사용.

과제 제출 방법 - 이메일

  • PDF 파일 1개 (30MB 이하, zip 압축하지 않음)
  • 파일명: 2026-00000.pdf (00000은 참가번호 다섯 자리)
  • 제출 파일에 인적 정보(이름, 학교 등) 노출 금지
  • 단, 이메일 상의 인적 정보는 무관(심사 그룹에 공개되지 않음)
  • 제출 마감일 2026년 1월 15일 목요일(23:59:59)까지 이메일이 도착해야 제출이 인정됨
  • 수정본을 여러 차례 제출한 경우, 제출 기한 내 도착한 마지막 메일만 인정됨
  • 제출 기준을 어길시 페널티 부과
  • 제출 확인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므로 상태 반영에 시간이 소요됨
  • 제출처: award@junglim.org

최종 공개 심사

  • 1차 심사 통해 선정된 팀은 최종 공개 심사에 진출합니다.
  • 1팀 당 총 15분 이내의 심사 시간(발표 약 7분, 질의응답 약 7분)이 주어집니다.
  • 모든 팀을 심사한 이후 대상과 입선 수상팀이 가려집니다.

참가 자격 및 시상

참가 자격

  • 국내외 대학/대학원 재/휴학생(전공불문), 개인 혹은 팀 모두 가능합니다. (1팀 최대 3인)
  • 참가팀 구성은 건축과 도시 전공자 외에도 인문, 사회, 과학, 경제, 미술, 디자인 등 모두 가능하며 다양한 전공 간의 협업을 권장합니다.
  • 참가등록 당시 학생 신분 혹은 입학 예정을 증명할 수 있는 자 모두 참가 가능하며, 입학 취소자는 추후 수상에서 제외됩니다. (2026년 2월 졸업 예정자 참가 가능)
  • 복수 참가등록 불가합니다.

시상

  • 대상(5팀): 상장과 상금 300만원, 정림건축 입사 지원 시 가산점 부여
  • 입선(다수): 상장과 상금 30만원

참가비 입금 안내

  • 홈페이지 오른쪽 상단에서 참가 신청 완료 후 입금 바랍니다.
  • 참가비는 팀 당 6만원이며, 계좌 이체시 반드시 팀장 이름으로 입금 바랍니다.
  • 참가비 입금은 신청 마감일 2026년 1월 2일 금요일(23:59:59)까지 완료되어야 합니다.
  • 하나은행 162-910013-41704 (예금주 재단법인 정림건축문화재단)
  • 참가비는 환불 불가합니다.
  • 입금명을 또는 메모에 [팀장명+휴대전화 번호 끝 두 자리](예: 홍길동78)로 입력하면 신속하게 확인됩니다.
  • 입금 확인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태 반영에 시간이 다소 걸리는 점 양해바랍니다.

문의

  • sun@junglim.org / 02-3210-4991
  • 입금 및 과제 제출 확인은 웹사이트 로그인 후 진행 단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문의는 가능한 이메일을 이용해주세요. 점심시간(12:00~13:00), 주말, 휴일에는 통화가 어렵습니다.

주최

정림건축문화재단

후원

정림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