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문명활동이 지질학적인 힘으로 작동해 이미 이전과 다른 지질학적 시간대, ‘인류세’에 접어든 상태라는 사회적, 문화적 공감과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 결과로 도래하고 있는 기후위기 속의 재난은 어느새 우리의 일상이 되었고 예측도, 통제 가능성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우리 능력을 벗어나 있다.
인류가 문명을 발달시켜 온 중심에 건축이 있다. 건축으로 국가를 재건하고, 경제를 일으키며, 사람을 모으며 문화를 이루어왔다. 한 문화권의 정신과 유산은 종종 건축물로 남는다. 집단학습된 직능의 지식과 기술, 논리와 이성으로 불확실한 상황을 확정적으로 이끌어가는 능력은 인류문명 구축에 기여해 온 건축의 동력이었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의 건축이 유효하지 않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 사회적으로 환경적으로 건축의 공공성과 책임에 대한 논의가 점점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건축이 ‘거주자’로 상정하고 계획의 중심에 두는 대상은 ‘인간’이다. 그중에서도, 르코르뷔지에의 모듈러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근현대 도시와 건축계획의 기준이 되어온 인간의 ‘몸’은 ‘(비장애)(이성애자)(남성)의 몸’이며, 이를 중심에 두고 주변부의 ‘약자’로 확장을 모색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그동안 건축이 배제한, 지구상에 거주하는 수많은 종의 생명체와 각기 다양한 모습과 능력을 지닌 인간의 몸이 어떻게 공존의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당면 과제로 놓지 않고서는 건축은 해법은커녕 거대한 문제의 일부가 될 우려가 있다. 상황의 급박함을 인지하고 전환을 모색하는 건축가라면 현재의 도시와 건축의 공간을 어떻게 다시 봐야 할까. 더 적게 짓거나 짓지 않는 건축도 건축 안에서 논의될 수 있을까. 계획의 목표와 과정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어떤 새로운 지식과 논리가 전환의 실무에 적용되어야 할까.
이번 공모는 시급한 질문들을 건축산업의 문제로, 기술의 문제로 유예하지 않는다. 참가자들에게 바로 지금, 익숙한 기존의 건축과 장소를 ‘지구’라는 대지,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하는 ‘모두’라는 거주자를 인식하는 지도 위에 올려 성찰하고, 내일의 지구를 위한 새로운 공존의 공간과 규범을 함께 상상해 보자고 요청한다.
우리가 지구를 비롯하여 그 거주자 모두와 맺는 관계를 재배치하는 공간을 짓기 위해서는 건축의 직능이 축적해 온 과거의 지식과 기술 그리고 건축가 자신의 경험에 의지하는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탐구해야 할 것이다. 참가자가 제안할 공간에 함께 거주할 ‘모두’는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대상이 아니다. 또한 개별 대지를 선정하여 관찰하고 분석해야 한다. 새로운 공간은 미래 시나리오로부터 정의되고, 변화에 열려있어야 할 것이다.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개별의 대지마다 특정한 거주자, 건축가와 다양한 협력자가 함께 관찰하고 상상한 바를 가지고 새로운 공존 규범을 만들기 위한 ‘미래의 지식’을 만드는 동시에, 그것을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건축과 도시에 새겨진 인간 중심의 관점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몸과 환경을 인지하는 관습적인 편향성을 깨고, 비인간 거주자와의 공존을 인지하며, 때로 인간 없는 건축과 도시를 상상해야 할 수 있다.
김초엽 작가는 『사이보그가 되다』에서 하나의 생물체가 주관적으로 인지하는 세계, 살아가는 환경을 일컫는 ‘움벨트(umwelt)’를 이야기하면서, “지구상의 생명체는 서로 너무나 다른 움벨트와 감각 세계, 미학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 안에서도 이 감각 세계는 흔히 어긋나고 미끄러진다”며, 그 불가해함에도 불구하고, 소설가로서 “타인의 삶을 애써 상상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에게 SF는 “나와 다른 존재를 탐구하는 과정”이자,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이야기이고, 다른 존재들을 세계의 중심에 두는 이야기이며 세계를 재설계하는 상상을 펼치기에 가장 적합한 사고 실험의 장”이라고 썼다. 여기에서 소설가를 건축가로, SF를 이번 공모의 시나리오 제안으로 대입해 본다.
이번 공모가 참가자 모두가 함께 만드는 내일의 지구를 위한 ‘사고 실험의 장’이 되고, 공모의 성과가 건축으로부터 출발하되 건축에 머물지 않는, 꿈틀거리며 생동하는 이야기의 시작이 되기를 기대한다.
- 심사위원 조재원(공일스튜디오 대표)
우리는 다 같이 직경 약 12,800 킬로미터의 크기에 시속 1,670 킬로미터의 속도로 빙빙 돌면서 시속 107,000 킬로미터의 속도로 궤도를 따라 날아가는 우주선 지구호에 탑승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가? 게다가 이 지구호에는 사용설명서가 탑재되어 있지 않다.[1]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과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유한성과 순환성에 대하여 무지했지만, 그동안은 소비할 수 있는 자원이 충분했기에 생존할 수 있었다.
올해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ing Day)은 8월 2일이었다. 지구 생태용량이란 지구에서 한 해 동안 생성할 수 있는 자원의 총량을 가리킨다. 이를 초과했다는 건 인간이 자원을 사용한 뒤 나오는 폐기물의 양이 지구가 흡수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섰다는 의미다. 즉, 올해의 남은 다섯 달 동안은 인간이 지구에 생태 빚(Ecological Debt)을 지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날은 매년 앞당겨지고 있다.)
해가 갈수록 극심한 피해로 드러나는 기후변화와 이로 인한 지속가능성에 대한 위기의식, 그리고 인간생물과 비인간생물을 지구에 서식하는 동등한 생태적 지위를 가진 대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자본의 논리에 따라 짓고 부수고를 반복하는 인간중심적 건축방식에 대한 회의와 반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이, 지구상 수많은 생물 모두의 삶의 터전인 지구에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거처로서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은 어떻게 변화해 나갈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세상에 어떻게 ‘존재해야’ 할까?
올가 토카르추크의 『다정한 서술자』를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우리와 그 이전 세대는 세상을 향해 늘 “네, 네, 네”라고 말해야 한다고 훈련 받았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늘 이렇게 되뇌곤 했다. 나는 이것저것 다 시도해 볼 것이고, 여기도 가 보고 저기도 가 볼 것이며, 이런저런 모든 걸 경험할 거야. 나는 이것을 가질 테지만 그렇다고 저것을 포기할 이유는 없잖아…, 지금 우리 곁에 출현한 새로운 세대는 작금의 새로운 상황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선택이란 “아니, 아니, 아니”라고 말하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법을 훈련하고 있다. 나는 이것도 포기하고 저것도 포기할래, 이것도 자제하고 저것도 자제해야지, 필요 없어, 안 해, 갖고 싶지 않아, 단념할게.비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지구호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 인간생물이 스스로 규정짓고 누려왔던 생물학적 지위를 내려놓고 수많은 포기와 ‘하지 않음’을 실천하는 것인지 모른다.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내려놓고, 모두 함께 당장 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실천들을 공유하고 행동하고 격려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오늘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정림학생건축상 2024에서는 ‘모두의 집: 내일의 지구를 위한 오늘의 건축’이라는 주제 하에 그간의 인간생물 위주로 건축과 도시를 이루어 온 방식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함과 동시에 사용자에 대한 편협한 정의에서 벗어나 우리의 복합성과 다른 생물들에 대한 의존성을 깨닫고 확장된 관점에 근거해 서로 기여하고 공존하는 삶의 방식, 지구라는 유일한 장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새로운 거주방식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 심사위원 김정임(서로아키텍츠 대표)
[1] 벅민스터 풀러, 『우주선 지구호 사용설명서』, 열화당, 2018.
사람이 만든 인공물질이 지구 생물량을 넘어섰다. 인간 활동 영역이 확장되면서 경작지가 늘어나고, 건물과 도시 건설이 이어졌고, 반대로 야생의 면적은 계속 감소했다. 20세기 초반에는 인공물질이 전체 생물량의 약 3%에 불과했는데, 불과 일세기 만에 인류의 인구는 4배가량 증가했고, 1960년대 이후로 인공물질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인공물 대부분은 콘크리트와 골재, 벽돌이나 아스팔트 같은 건설재들이다. 이제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의 생물량은 인공물의 0.36%에 불과하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1만 년 전 인간과 가축은 지구 생물량 중 1%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90%가 넘는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야생동물과 인간·가축의 무게를 대조하며 지구 동물 중 한 종에 불과한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간이 야기한 기후변화와 과도한 개발은 오랜 기간 유지되어 온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며 수많은 야생동물을 내쫓고 멸종의 길로 인도했다. 그 결과는 사스, 메르스,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의 발생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인간 탐욕의 결과가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다.
인류문명의 발전과 인간 정주지와 도시 확장은 자연과 야생동물의 터전을 밀어내고 그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이룬 성과이다. 앞으로도 자연과 야생을 계속 말살할 것인가? 도시에서 야생동물을 혐오하고 배제할 수밖에 없는가? 과연 인간의 안전하고 쾌적한 생활은 야생의 온전한 자연과 대척점인가? 인수공통감염병을 예방할 방법은 야생과의 차단과 격리가 최선인가? 야생과 함께 공존하는 방안은 없는가?
찰스 다윈의 후계자로 불리는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의 유전자에 본능적으로 자연과 생명을 사랑하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가 내재되어 있다고 했다. 바이오필릭시티(Biophilic city)는 단순히 물리적인 차원에서의 친환경 요소가 아니라, 인간 삶의 공간과 자연과의 유기적인 연결성을 중요시 여긴다. 야생과의 호혜적인 상호관계성을 기반으로 자연과의 유대감을 키워야 한다. 인프라 차원에서의 녹지공간은 권태롭고 작위적인 경관일 뿐이다. 다양한 생명을 품어내는 야생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는 자연 없이 살 수 없으며 오히려 야생의 귀환을 열망하기도 한다. 야생을 지워버리고 야생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문명은 이제 자연과 맺어 온 관계를 반성적으로 돌아보고 다시 야생으로 생태적 전환의 방향을 돌리고 있다. 유럽과 북미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리와일딩(재야생화, Rewilding)은 근대적 인간-자연 관계를 전환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리와일딩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통제와 관리를 통해 작동하는 근대적 자연 보전과 차별화된다. 비인간생물 스스로의 활력과 의지에 따라 탈바꿈하도록 야생에 길을 열어주는 회복의 방법이다. 대형 포식자의 귀환으로 생태계의 역동적인 상호관계가 풍부하게 돌아오기를 바라기도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한편,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물러나거나 이상적인 생물종 조합을 재건하고 복원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리와일딩의 핵심은 자연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인간을 야생의 자연과 다시 연결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다른 종의 삶도 보호할 수 있다.
“우거지고 우글거리게 둘 수 있다면, 더한 아름다움을 만날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 정세랑 작가의 ‘설렁설렁 탐조생활’[1]
우리가 생활하는 도시와 마을에도 야생은 돌아올 수 있고,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그들은 이미 같이 살고 있다. 어떤 생물종은 환영을 받기도 하지만, 대개 불쾌하고 피해를 준다며 혐오와 배제의 위협을 받는다. 생명을 배려하지 않는 싹쓸이식 개발 관행과 벌레 한 마리를 용납하지 못하는 박멸된 깔끔함을 선호하는 태도가 문제다. 그런데도, 야생은 인간이 점유한 땅과 건축물에서 끊임없이 기생하거나 공간경쟁을 벌인다. 길고양이 같이 인간의 핍박과 보살핌 속에서 야생의 법칙을 넘나들며 경계에 선 동물들도 늘어가고 있다.
온전한 ‘야생의 땅(wilderness)’을 만들기는 어려우나, ‘좀 더 야생적인(wilder)’ 곳을 만들 수는 있다. 생태중심주의 사상가 알도 레오폴드는 야생의 관점에서 너무 작은 땅이란 없다고 말했다. 건물에서, 마을에서, 도시에서도 자연의 원리가 더욱 융성하게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소외되고 격리된 현상이야말로 자연을 보호하고 야생을 복원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결국 인간의 생태적 감수성과 생태적 윤리를 일깨울 수 있는 인간 마인드의 리와일딩이 필요하다.
건축은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인류가 건축물 밖의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서 건축은 자연에 개방적이고 그 자체로 생태계가 되어야 한다. 건축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생명의 존재 모두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건축이 비인간생물 누구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 야생과 시공간적인 타협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지, 배타적인 사람의 태도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지, 생태계 공진화(coevolution)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과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인류와 자연을 구원할 대단한 해법은 아닐지라도 다양한 뭇 생명을 초대하여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꿈과 이상을 펼칠 수 있도록 젊은 건축가의 야심 찬 역할을 기대한다.
- 심사위원 최진우(환경생태 연구활동가)
[1] 생명다양성재단 뉴스레터 하늘다람쥐 42호
현존하는 부지/건축물/장소/기반시설 등 인간이 만든 구조물을 선택하여 ‘지구’의 관점에서, ‘모두’로 확장된 사용자의 관점에서, 현재의 계획대상지를 성찰, 전향적으로 재검토하고, 참가자가 정한 시간의 스케일로 리-이노베이션(리노베이션)의 미래 시나리오를 작성함으로써 ‘모두’를 위하여 공간을 점유하는 새로운 거주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 과제다.
참가자들과 가까운 어떤 장소나 건축도 대상이 될 수 있다. 나의 집, 집과 이웃한 공원(각종 편의, 부대시설(체육시설/유치원/공연장)을 포함한), 빈집에서 학교 캠퍼스까지 인구감소로 유휴화된, 될장소들, 역사/터미널, 아파트 유닛/파사드/지하 주차장, 행정복지센터(동사무소)/도서관/보건소 같은 커뮤니티의 거점, 도시 숲, 병원, 조경과 거주 공간이 어우러진 호텔, 숲 체험/휴양림 등의 산림휴양시설, 중소도시의 인프라, 농촌의 농촌주택표준설계 등등.
현존 계획대상지의 선택은 공모와 참가자의 주제 의식을 실험하고, 임팩트 있는 시나리오를 구축할 가능성이 있는 적정한 대상을 자유롭게 선택한다. 계획대상지의 생태적 맥락, 현재의 용도, 사용자 정의 등을 관찰하되 새로운 생태 맥락과 확대된 ‘사용자’의 관점을 도입해 성찰적으로 분석, 재검토한다. 계획대상지의 특수성, 참가자의 주제 의식과 연계하여 확장된 거주자 ‘모두’의 범위를 설정한다. 기존의 표준 인간(어른-건강한 신체의–남자)을 사용자로 인식하던 관념에서 벗어나 참가자가 대상으로 하고 싶은 확장된 사용자 특성을 서술한다.
결과물의 형식을 계획안이라 하지 않고 ‘시나리오’라 함은 현존하는 계획대상지를 분석, 관찰하는 시점이나 이 장소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미래를 상상으로 구축하고 제안함에 있어서 시간을 지운 ‘공간’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과정, 시간성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구체화하는 형식이라는 의미다. ‘모두’가 공존하는 양태와 필요한 거주의 형식을 참가자가 정의한 시간의 스케일로 시나리오로 작성하고, 행위자들의 변화와 공간의 재구조화 방식을 도면으로, 이미지로, 스토리로 재현한다. 현재와 제시하는 미래의 관계를 단계로 제시할 수도 있고, 근미래, 먼 미래의 한 시점을 제시하여 시나리오를 수용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시점에 이르는 단계들을 상상토록 열어둘 수 있다.
* 심사위원이 참가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기존 건축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주제를 해석할 단초를 예로 든 것. 이를 참고하되, 참가자가 자유롭게 접근하고 해석하여 시나리오를 작성하기를 바람.
다양한 배경을 지닌 구성원으로 팀을 구성하기를 권장하며, 이번 공모가 집단지성, 협동 연구의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번 공모의 목표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건축의 ‘해결책’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다. 참가자의 케이스에 대한 성찰과 관찰, 전환의 실마리 발견이 더 다양한 에이전트의 네트워크에 연결되고 활성화하는 한 지점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장밋빛 해결책보다 불가능함, 무기력함과 맞닥뜨리더라도 ‘같이 해결해 보자’고 공동체에 공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질문을 도출하는 것, 새로운 지식의 초석을 만드는 태도와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거대한 문제에 대응하는 작고 미미하더라도 지금 당장 실행에 옮길 어떤 시도도 과소하게 평가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계획대상지를 둘러싼 생태적인 맥락,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거주자’에 대한 인지는 학습을 토대로, 또한 상상의 힘으로 확장해야 할 것이다. 만약(what if)을 가정하며 자유로운 상상을 펼치되,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는 사용자의 요구를 어떻게 반영할지, 건축가가 어떤 협업네트워크와 소통방식으로 인식과 지식을 확장할 것인지 또한 이번 공모의 중요한 챌린지 중 하나일 것이다.
*각 참가자는 참고 자료 아카이브에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의 초석을 놓는 데 기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