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1

‘한국성’은 한국의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1960년 이래 건축계에서 완전히 사라진 적 없는 문제적 개념입니다. 일본과 다른 정체성에 대해 묻는 부담감은 사라졌지만,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장에서 한국 건축의 문화적 배경과 내러티브를 설정해야 하는 지금도 한국성은 여전히 논쟁적 문제이자 물음입니다. 이 어려운 질문에 답해준 모든 참여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기존 관행을 답습하는 안에서 신랄하게 오늘의 한국을 비판하고 냉소하는 안까지, 한국성에 대한 학생들의 다양한 시선을 엿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습니다. 제각각의 해석 속에서도 몇 가지 공통된 흐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별적인 작업에 대한 세세한 평가보다는 전체적인 현상을 짚는 것으로 심사평을 대신할까 합니다.

첫째, 한국성을 일상과 개인적인 경험에서 추출하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주제 설명 등을 통해 전통이나 과거의 유산에 국한해 한국적인 것을 찾으려는 종래의 시도를 비판적으로 언급한 바 있습니다만, 참가자들의 눈은 제 예상보다 훨씬 더 현재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개인적인 차원에서 한국성의 단초를 읽어냈기에, 그 결과 역시 보편적이고 일반적이기보다 특수하고 개별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는 한국성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이들이 쉽게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는 건축적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데에는 도달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거의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레퍼런스를 버내큘러 건축에서 찾았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제가 내심 기대했던 20세기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들의 대표적인 단독주택과 정면 대결하는 모습은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현상을 포괄하는 ‘한국 사회’가 아니라 이에 비하면 대단히 좁은 영역인 ‘한국 현대건축’과 대면하는 안은 없었습니다. 이런 대결은 건축 내부의 담론을 증폭하고 공고히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미 수십년 동안 한국성을 묻고 답해온 이전 건축가들의 어깨 위에 올라타 오늘 자신의 건축을 건축계 내부의 문맥에서 설정하는 매우 유요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학생들이 쉽게 참조할 수 있는 역사적 문맥과 배경을 제공하지 못한 역사와 비평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과제인 동시에 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찾았다고 여기는 순간, 진위를 의심받는 성배, 너무나 많은 덫과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퀘스트가 참가자 여러분들의 생각을 벼리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 심사위원 박정현

심사평 2

이번 심사에 적용한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은 다음의 네 가지다. 먼저 계획적으로, 표현적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 더 나아가 아름답지 않은 것은 배제하였다. 폭발적으로 난잡하고 규정하기 어려운 지금의 한국성이기에 오히려 개념의 명료함과 미학적 가능성을 통해 학문의 영역으로 들어오길 기대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완결된 아름다움을, 즉 모더니즘에서 보였던 전체적 조화에 수준 이상의 집착이 보이는 것 또한 배제하였다. 이는 보편적 한국성이 소위 정 없는 깍쟁이 보다 좀 덜 떨어진 미완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다. 셋째는 제시된 안이 현재 우리가 가진 상황들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새롭게 재해석될 만한 ‘긍정적 가능성’을 열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넷째는 즉물적, 직관적으로 K-스러운가를 고려대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기준을 토대로 추가 논의의 필요성이 있는 안들을 선별하였고 대상의 수상 여부를 떠나 최종 선정된 12 작품 모두가 각기 다른 측면에서 유의미하였다.

‘율도피아’는 상당히 관조적 태도를 보이는 비판적 선언에 가깝다. 단독주택이라는 프로그램은 큰 의미 없지만 역설적으로 실내 모형 사진에서 보이는 혼성과 이접의 미학적 가능성이 보이는 점은 이 프로젝트가 다시금 현실을 긍정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비주류의 버려진 장소로서의 밤섬을 대지로 선정한 점 또한 충돌과 관조의 지점으로 적절해 보이며, 이에 더해 상징적으로 차용된 요소를 격자 그리드와 대립시켜 더욱 파편화된 모습을 드러내면서 적절히 억압 혹은 해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둔탁하고 컬러풀한 컨셉 드로잉 또한 지금 엉성한 우리의 상황을 압축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그래도 사랑하시죠?’는 우리가 가진 시답지 않은 것을 건축 요소가 아닌 건축 유형으로 끌어들이려고 한 노력이 인상 깊다. ‘1호선 빌런’으로 상정한 집주인 자체가 한국성을 대변한다고 볼 때 재미있는 접근이다. 다만 견고해 보이는 벽체와 슬래브의 구성이 비닐하우스의 가성비적이고 휘발적인 속성에 서로 부합되지 않는 듯 보이며 그에 더해 설정한 집주인의 괴랄한 성격이 더 부각된 ‘엉성한 구축’이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래동보다는 비닐하우스가 원래 많이 발견되는 교외 들판같은 생경한 장소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듯하다.

‘플러스 마이너스’가 제시한 “건축은 가볍고 프로그램은 무겁다”는 단순한 명제는 지금 한국건축의 상황을 적절히 관통한다. 각자의 구미에 맞게 자유롭게 DIY로 구성된 입면이 서로를 고려치 않은 채 조각보처럼 보이는 점은 우리 주변을 보는 듯하다. 다만 명제와는 다르게 오히려 제공된 격자틀, 건축이 무거워 보이고 프로그램이 가벼워 보이는 점은 다소 의아하다. 속박된 틀안에서도 어떻게든 각자의 공간을 구성한 발랄한 내부공간은 발버둥치며 사는 한국 사회를 연상케 한다.

‘낭떠러집’은 매우 따뜻하면서도 이름이 남기는 뉘앙스가 상당히 묘하다. 창신동 돌산을 물질만능주의에 따른 단절의 상징적 장소로 상정하고 구체적 대안을 통해 해결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용적률 0%에 지상층을 완전히 비워냄으로써 생긴 공허함은 사유재산으로서의 단독주택에 희생을 요구했지만 5개 층을 오르내려야 하는 마을계단길, 개인 공간 앞에 마련된 공용 마당 등이 실제로는 작동하기 어려워 무용지물이 되는 듯한 점을 오히려 윤리적 태도가 가진 모순과 부조리의 ‘낭떠러집’으로 표현하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 만큼 긍정적 태세와 매력적인 자태를 지닌 아름다운 집이다.

‘호작도와 참조적 유희’는 민화를 통해 한국적 데페이즈망(dépaysement)을 제시한다. 참조와 비참조를 호기롭게 넘나드는 태도는 상당히 비윤리적이며 호탕한 자객과도 같다. 평면에서 보이는 현관 공간, 계단, 9정방 구조 등의 스케일과 위계가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참조물들 사이에서 유희적으로 구성(composition)되는 일종의 그래픽적 구축(tectonic)이라는 점에서도 인상 깊다. 마치 졸부의 집처럼 고상함과 과도함 사이에 있지만 키치적이지는 않다. 추상적이면서 구상적이고, 기능적인 듯하지만 수사적이고, 이상한 듯하면서 아름답고, 규정될 듯하면서 계속적으로 미끄러지는 모호함이 쉽게 결정내리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우유부단함을 긍정적 가능성으로 보여준다.

지난 몇십 년간 부여잡고 있었지만, 답을 내지 못한 한국성을 이번 정림학생공모전을 통해 답을 내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한국성이라는 논의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한국성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이제는 우리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긍정하고 그 안에서 가능성을 찾아야만 한 발짝 이라도 우리만의 고유한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발걸음을 기꺼이 내디뎌 준 학생 여러분께 응원과 감사를 보낸다.

- 심사위원 서재원

심사평 3

한국성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는 일용할 양식이 될 것이기에 손이 데일 것을 감수하면서도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금, 한국성’의 공모에 참여한 모두가 나름의 해답으로 이 필요의 요청에 응답하였습니다. 참가작들을 살펴보며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를 이해하려는 다양한 시선과 노력이 반가웠고 용감한 건축적 제안들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한국성이라 불릴 특성을 찾아내기 위한 여러 시도 중에 켜켜이 쌓인 시대와 문화가 중첩된 현재 도시의 모습을 반영하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브라크의 콜라주를 연상시키는 [율도피아]는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밤섬에 한국 사회에 대한 상징으로서의 기념비를 만들었고, [호작도와 참조적 유희]는 소환된 건축적 요소들을 자발적 참여의 주체로서 유희적으로 충돌시켰으며, [오케아노스의 집]은 선택한 장면을 사면에 두르고 정사각형의 평면을 단단히 잠금으로써 오히려 의미를 건드리는 명상적 공간을 지었습니다. 또한 [이태원 짜깁기집]은 키치의 건축적 수용이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동화적인 조형감으로 녹여내었습니다. 이러한 방향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의 태도를 바탕으로 잊혀갔던 건축적 어휘들을 찾아내고 이 어휘들의 충돌에 따른 새로운 공간과 경험의 생산을 기대하게 하지만, 우발적 가능성 이후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는 듯했습니다. 

반대로 한국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의 작품도 있었는데, ‘정’으로 미화되는 침범의 불편함을 드러내기 꺼려지는 요소들을 장식화하며 다가구주택 같은 유형의 단독주택으로 제시한 [신사 빌라트]가 그러했고, [사이비 주택]은 동질성 안에 숨고자 하는 심리를 주변의 건물과 유사한 콘크리트 가면으로 공격하였습니다. 순수예술의 영역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비판의 강도는 건축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측면이 있으나, 동일한 지점에서 한국성의 탐색에 적절한 수단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습니다. 

[A house among us]와 [플러스 마이너스]는 현대사회의 유동적이며 모호한 특성에 주목하였는데, 전자는 근생과 같은 외형과 공간의 무성성을 다양한 주거의 활동을 담는 내부공간과 대비시킨 반면, 후자는 최소한의 구조와 시스템을 가진 가벼운 건축을 제안하며 점유에 의해 변해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무성성이 한국적 가치로 거론되는 것과 유연하고 가벼운 건축 유형의 제안이 아직도 참신하고 유효한 것인지는 공감하기 어려웠습니다. 

[낭떠러집]은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만남이라는 다소 상투적인 주제를 채석장 절벽이라는 수직적 경계의 위치선정과 두 계단의 대비를 통해 극적으로 만들었고, [담장_현대적 불안감과 편리한 해결책]은 주택이라는 사적 영역의 경계에 담장과 공간의 섬세한 높이설정을 통해 안과 밖의 미묘한 관계를 우아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여러 겹의 나, 여러 명의 나]는 사회에 속한 나의 모습과 욕망에 한국성이 있다는 전제로 스스로 원하는 바를 다양한 아이디어의 공간으로 계획하였으나, 위의 세 작품은 계획과 표현의 완성도에 비해 주제의 새로움과 엄밀함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사랑하시죠]는 비닐하우스, 괴랄한 노인, 문래동 공장지대라는 소외된 영역을 끌어안고 이 조합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주택을 제시하려 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으나, 각각의 요소를 더 깊게 고민해 그 집의 성격에 드러났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성’의 공모를 통해 오백 채 가까운 단독주택이 모였습니다. 이 집들이 모여 마을이 되면 가장 한국적인 동네가 탄생할까요? 한국성이라는 헤아리기 힘든 주제를 건축에서 논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 번 실감합니다. 모든 참가자의 노력과 수고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논의를 마치기에 다소 아쉬운 마음이 남는 것은 탁월함의 부족이 아니라 바라보는 시선의 거리감 때문인 듯합니다. 우리가 한국성을 찾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알아가려는 것인 만큼 집단의 속성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속한 나를 가까이 마주보고 살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며, 필요한 것은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부터 나와 관계된 주변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유대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저와 여러분에게 시작된 우리를 향한 관심이 지속되어 다시 같이 이야기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심사위원 김효영

주제 글 1

2022년 정림학생건축상은 ‘지금, 한국성’을 묻습니다. 케케묵은 것처럼 보이는 ‘한국성’을 ‘지금’과 만나게 하기 위해서는 한국 현대 건축의 흐름을 되짚어 보아야 합니다. 지난 세기 한국성은 한국 건축의 성배였습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고 국민국가를 형성해나가던 1960년대 이래, 정부청사, 미술관과 박물관, 극장과 공연장, 체육관과 박람회장 등 국가를 상징하는 모든 건축물은 한국성을 찾아 나서야 했습니다. 식민지배와 전쟁 이후, 타자와 다른(무엇보다 일본과 다른) 한국이라는 고유한 정체성을 획득하는 일은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상징하는 건축물이 이 과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건축가들은 먼저 전통 건축의 형태를 콘크리트로 번안하거나 추상화하는 시도를 펼쳤습니다. 재래의 건축 형태를 현대의 재료로 표현하는 것은 전 세계에 걸쳐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보편적인 흐름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전통과 현대의 타협은 쉽지 않았습니다. 콘크리트로 기와지붕을 올리라는 국가의 줄기찬 요구와 동시대 현대 건축으로 도약하고 싶었던 건축가들의 욕망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콘크리트로 만든 전통 건축의 요소를 극복하기 위해 대두된 것이 외부공간입니다. 한국 건축의 정수는 건물 자체라기보다는 그 건물들의 군집이 빚어내는 외부공간에 있다는 이 아이디어는 한국성 논의의 물꼬를 틀었습니다. 이 흐름은 당, 마당, 비움, 보이드 등으로 변주되며 이어져 내려옵니다.

구체적인 형태 또는 추상적인 공간에서 한국성을 찾는 이 두 경향은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해석되곤 합니다. 전자는 역사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불리고, 후자는 모더니즘을 재발견하려는 움직임으로 파악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이 둘의 공통점도 분명합니다. 서구의 것과 다를 뿐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과도 구분되는 한국성의 정수는 근대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여기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세기 한국성은 탈출구 없는 일종의 정언명령이자 윤리였습니다.

정림학생건축상 2022는 한국성을 둘러싼 이런 통념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지금, 한국성’이라는 주제로 여러분과 함께 탐구하고 싶은 한국성은 단일한 기원을 갖거나 본질적인 형태로 이미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성은 미리 존재하는 하나가 아니라 매번 다르게 구성될 수 있는 여럿입니다. 따라서 오래된 과거의 것에서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 만들어내는 한국성에 더 주목합니다.

이훈우나 박길룡, 누구를 시작점으로 삼더라도 이제 한국 현대 건축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닙니다. 현대의 유산이라고 해도 좋을, 20세기 건축가들이 생산한 수많은 건축물이 2021년 한국성을 이야기하는 데에 새로운 참조점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한옥에서 생활한 경험이 거의 없는 아파트키드들이 중견 건축가가 되었고,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수많은 건축가 없는 건물들이 지어진 지금,  한국적인 것을 찾는 다른 출발점이 필요합니다. 다세대 다가구 주택에서 도시의 컨텍스트를 찾고, 불법과 합법을 오가는 증·개축에서 형태의 모티프를 발견하고, 한옥과 현대 건축을 구분하지 않는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에서 이미 이런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성”은 한국성이란 되풀이되는 물음에 답하는 ‘지금’의 자리에 주목합니다. 전통 건축과 서구 건축 이론 모두 직접 주어져 있지 않은 세대, 그러나 동시에 둘 다 자신의 자산으로 삼을 수 있는 새로운 세대에게 한국성은 어떤 것인지, 또 한국성을 도구로 삼아 무엇을 만들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려 합니다.

- 심사위원 박정현 


주제 글 2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조차도 사치로 여겨질 만큼 급속한 근대화가 이루어진 이 땅에서 한국적 모더니즘을 서양의 관점 아래 논하는 것은 결국 건축가들만의 신세 한탄으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제는 그런 잣대를 떠나 우리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매일 마주하는 주변부터 면밀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닭 먹방’을 보고 ‘범 내려온다’를 듣는 2021년 지금, 과거의 무거운 짐을 벗고 일상과 현실로부터 논의를 출발하는 것이 새로운 한국성에 관한 이야기를 생산적이고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도시는 극히 파편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혼성교배적이고, 아이러니합니다. 가히 미셸 푸코가 언급했던 '들뢰즈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자본주의의 성공과 폐혜를 동시에 드러냄으로써 증명하고 있습니다.[1] 콜드플레이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지는 서울은 그 어느 도시보다도 히스테릭하고 힙합니다. 오히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서울은 놀라울 정도로 다른 패러다임을 가진 도시이며 기존의 도시 패러다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놀랍고도 매력적인 도시인 것입니다. 이러한 서브 컬처로서의 면모는 한국성 담론에서 공공연히 외면받아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들을 잘 활용하지 못합니다. 특히 서양에서 체계화된 학문인 건축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한국성을 치켜세우거나 한국 도시의 불합리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다만, 한국인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적 토대와 그 물리적 결정체로서의 도시, 그리고 우리 주변 건물들이 이 둘과 맺는 인과관계를 추적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이는 앞으로 우리가 이어갈 건축 작업에서 ‘지금’의  한국성이 어떻게 건축적 어휘로 포함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함입니다.

우리 도시는 온갖 키치와 초현실성으로 가득합니다. 거대한 산을 지우고 들어선 무거운 콘크리트 덩어리인 아파트 단지는 가짜 초록 물질로 다시 둘러 싸이고, ‘◯◯캐슬’, ‘◯◯지움’ 같이 꿈과 이상이 압축된 얇디 얇은 이름들로 포장됩니다. 차창 밖으로 불현듯 나타나는 중세 유럽의 성을 닮은 건물은 프로방스풍 예식을 치루는 결혼식장이며, 동네에서 심심찮게 마주치는 고딕풍의 교회들은 이미 장소성을 떠난 대중적 키치의 산물입니다.[2] 모텔 창문에, 다세대 주택 현관에, 공항 식당가 불고깃집에, 대학 건물에도 정체불명의 양식들이 차용됩니다. 극도로 혼재된 이런 콜라주적 건축들은 콘텍스트라는 윤리성과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이기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는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매우 복합적인 정신 구조의 산물입니다. 관계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회에서 극한의 경쟁을 해야 하는 모순된 삶이 만들어낸 조울증적 표피이자, 우리에게는 당연했던, 자본주의의 적나라한 실체일 것입니다. 혼돈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극단적 실용주의와 가성비, ‘대충대충’과 온정주의, 적당한 절충과 대인배정신, 윤리에의 강박을 우리는 매일 일상 속에서 마주합니다. 이런 태도와 정신을 외면한 채 한국성을 고상한 것들 속에서만 찾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3] 

‘시를 위한 시’를 비판했던 시인 김수영은 낙후한 현실에서의 시적 진보는 “뒤떨어지지 않은 것 같은 시를 위조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 낙후성을 확고하고 여유 있게 의식하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4]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온몸으로 부둥켜 안으면서도 보다 나은 현실을 지향하는 낙천적 풍자를 통해 긍정적 탈주를 한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도시와 건축은 온통 질타의 대상이었습니다. 우리는 저 시인처럼 우리 도시와 건축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기울이고 공감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정림학생건축상 2022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보듬고 껴안는 과정이며 우리가 시시하게 여겼던 것들, 숨기려고 했던 것들이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건축적 실험이자 유희입니다. 그러한 연유로 이번 정림학생건축상의 프로그램은 윤리성, 공공성과는 의도적인 거리를 두고자 합니다. 빌라 사보아와 바나 벤추리 하우스가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방점을 찍었던 것처럼 작고 사적이지만 시대의 미학을 역설적으로 가장 잘 응축해서 보여줄 수 있는 단독주택을 설계의 대상으로 합니다. 1993년 강남에 들어선 수졸당이 그 시대 한국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한다면,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22년 우리 시대의 ‘수졸당’은 무엇일지 다시 묻습니다.

- 심사위원 서재원


 

[1]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그들의 일련의 책에서 현대사회를 편집증에 대비되는 분열증적 자본주의로 규정하면서 중심을 부정하고, 차이, 다양체 등의 가능성을 긍정하였다.

[2] 피터 W.페레토, 정은주, 조순익 역,  『플레이스/서울』, 프로파간다, 2015, 298~337쪽.

[3] 현대 한국인이 처한 복합적 상황을 잘 드러낸 짬짜면과 반반치킨은 한국인의 오랜 염원이 이뤄낸 ‘적당한 절충’의 산물이다.

[4] 김영준, 『시인 김수영 전집2』, 민음사, 2018,576쪽.  김상환,  『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 민음사, 2000, 50~56쪽.


주제 글 3

한국성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누구는 ‘제 것을 알지도 못하면서’라며 눈을 부라렸고, 누구는 ‘이제 지겨우니 제발 그만’이라며 눈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실체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지치면서도 남의 것을 계속 좇고 있는 찜찜함이 남아 있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한국은 어느 시점에 외부의 힘에 의해 그동안의 삶의 방식과 문화가 단절되고, 새로운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이후의 한국성 논의가 단절되었던 것을 소환하는 쪽이나 거부하는 쪽이나 둘 다 극단적으로 표출되었던 것은 시대의 상황에 대한 열등감의 발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지금 다시 한국성을 논하는 것은 갑자기 어떤 실체가 나타나서가 아니라, 이제는 다른 태도로 우리를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과거와 단절을 통해 새로움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적 흐름과 잃었던 것을 다시 복권시켜 이어가야 한다는 공동체적 사명이 한동안 대치했습니다. 건축 분야에서는 모더니즘 대 포스트 모더니즘으로 불리던 싸움이 오랜 세월 지속되는 동안 새로웠던 것들이 더 이상 새롭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지났고, 민족과 지역의 본질적 속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신 우리에게는 더 많은 문화의 파편과 시간의 켜가 쌓였습니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의 서로 다른 문화와 양식이 우리를 만들어 왔고, 지금의 우리 모습을 표현해주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과거 한국성 논의가 집단의 대표성을 규명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배제해가면서 남과 다른 본질적 속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다면, 이제는  어떤 우위를 판단하지 않은 채로 여러 특수성과 가능성 속에서 지금의 한국성을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금의 우리에 대한 단호한 긍정입니다. 절대적 기준에서의 맞고 틀림이 아니라 지나온 과정에 대한 이해와 지금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우리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긍정의 태도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시선들이 필요합니다. 집단적 시선은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배타적이 되고 한 방향으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로운 한국성 논의의 목적은 집단의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함보다 지금의 우리와 관계하는 것을 찾아내기 위함입니다. 긍정적 태도와 개인적 시선을 통해 지금의 우리에게서 발견된 것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말해 줄 것입니다.

이번 정림학생건축상의 계획 대상은 단독주택입니다. 한국성을 단독주택이나 주거공간에서 찾자는 말이아닙니다. 개인적 시선과 그것의 건축적 표현에 집중하기 위함입니다. 주택은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공간이며 개인의 일상과 가장 맞닿아있는 건축이므로 여러분이 발견한 한국성의 단서들이 사회적, 윤리적인 잣대에서 비켜나서 개인적인 내용과 방식으로 건축으로 연결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모인 집들이 ‘지금, 한국성’을 말해주기를 기대합니다.

- 심사위원 김효영


심사위원

김효영

단국대학교와 경기건축전문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여러 젊은 건축가의 아틀리에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김효영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건축이 만들어지는 상황에 감정을 이입하여 어떤 성격을 찾아내고 표현하며, 이를 통해 생겨나는 질문으로 지금의 우리를 건축과 묶어내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영주시, 서울시,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공공건축가로 활동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주요 작업으로 울산 바닷가 벽 집, 자람터 어린이집, 점촌 기와올린 집, 문경 복터진집과 공모전 당선 후 시공 중인 동해 무릉3지구 폐쇄석장 리모델링과 인제 스마트복합쉼터 리모델링 등이 있다.

서재원 

단국대학교와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현재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다. 현대 사회의 다면적 상황을 ‘비판적 수용’의 관점 아래 애증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부조화와 조화, 합리성과 비합리성, 풍자와 농담 등의 모순적 병치를 통해 한국 사회의 동시대성을 담고자 노력하고 있다. 주요 작업으로 음성 디귿집, 성산동 고양이집, 제주 쌓은집, 홍은동 남녀하우스, 망원동 단단집, 서교 근생 등이 있으며, 2017년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와 서울시 공공건축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박정현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 발전국가 시기 한국 현대 건축』을 비롯해 『김정철과 정림건축』(편저), 『전환기의 한국 건축과 4.3그룹』(이하 공저), 『중산층 시대의 디자인 문화: 1989~1997』 등을 쓰고,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 『건축의 고전적 언어』 등을 번역했다. 2018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Out of the Ordinary》(2015, 런던), 《Contemporary Korean Architecture, Cosmopolitan Look 1989~2019》(2019, 부다페스트) 등의 전시에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현재 도서출판 마티에서 편집장으로 일하며 건축 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알라딘 저자 소개)


전체 일정

  • 참가 신청: 2021년 11월 8일 ~ 2022년 1월 17일(월)
  • 주제설명회: 2021년 11월 20일(토) 오후 5:00~7:00 (줌+유튜브)
  • 과제 제출: 2022년 1월 24~28일(금)
  • 1차 심사 기간: 2022년 2월 7~22일(화)
  • 1차 심사 결과 발표: 2022년 2월 23일(수)
  • 최종 공개 심사: 2022년 3월 12일(토) 오후 13:00~17:30
  • 최종 심사 결과 발표: 추후 공지
  • 일정 변경 시 뉴스, SNS, 이메일 등으로 공지합니다.

과제 요강

설계과제

  • 프로그램: 단독주택
  • 사이트: 자유 (실재하는 전국 각지, 모든 산과 들 포함)
  • 면적: 제한 없음
  • 법규: 제한 없음

제출물

  • 콘셉트 드로잉
  • 엑소노메트릭
  • 전층 평면도
  • 단면도(2장 이상)
  • 입면도(2장 이상)
  • 배치도(적정 스케일)
  • 도면 스케일: 1:100 (치수선 없이, 스케일바 삽입)
  • 그 외 모든 자유로운 표현 가능 
  • 프로젝트 설명글 (공백 포함 2,000자 내외)
  • 최종 심사 진출 팀에는 추가 과제가 주어질 예정 (제출물은 추후 공지) 

과제 제출 방법

우편 제출물

  • 최종 PDF의 출력물 1부
  • 표지에는 제목과 참가번호만 기입.
  • 모든 출력물에 인적 정보(이름, 학교 등) 노출 금지.
  • 단, 우편용 서류봉투의 인적 정보는 무관. (봉투는 접수 후 폐기됨.)
  • 도면이 A4에 출력되지 않을 경우 A3 등에 출력 후 접어서 포함 가능.
  • 스테이플러, 집게 등으로 출력물이 분리되지 않도록 묶어서 제출.
  • 박스 포장 금지. (출력물을 서류봉투에 넣어 간소하게 제출.)
  • 마감일 1월 28일 18:00까지 도착해야 함.
  • 우체국 익일특급(=빠른등기)로 제출. 당일특급/KTX특송/퀵서비스/방문제출 불가. 
  • 제출처: 03044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8길 19 정림건축문화재단

이메일 제출물

  • 출력물의 원본 PDF 파일 1개 (100MB 이하)
  • 파일명: 2022-00000.pdf (00000은 참가번호 다섯 자리)
  • 파일에 인적 정보(이름, 학교 등) 노출 금지.
  • 단, 이메일 상의 인적 정보는 무관. (심사 그룹에 공개되지 않음.)
  • 마감일 1월 28일 자정(23:59:59)까지 도착해야 함.
  • 이메일과 우편 제출 모두 완료해야 1차 과제 제출 인정.
  • 우편 및 이메일의 제출 기준을 어길시 패널티 부여.
  • 제출처: award@junglim.org

공개 심사

  • 1차 심사 결과 발표와 함께 추가 과제가 주어질 예정입니다.
  • 1차 심사 통해 선정된 팀은 최종 공개 심사에 진출합니다.
  • 1팀 당 7분 이내의 발표 후 심사위원과의 질의응답을 거쳐 대상팀과 입선팀이 가려집니다.
  • 발표용 파일은 윈도우에서 구동 가능한 PPT 혹은 PDF 형식으로 준비 바랍니다.

최종 심사 결과

대상

  • 율도피아 / 이석주, 최인학, 조휘준 (연세대학교)
  • 그래도 사랑하시죠? / 이미래, 김상윤, 이지웅 (단국대학교) 
  • 플러스 마이너스 / 박서현, 양유진, 최맑은별 (서울시립대학교) 
  • 낭떠러집 / 한현수 (강원대학교) 
  • 호작도와 참조적 유희 / 유정민, 김승묵 (국민대학교) 

입선

  • A house among us / 이건호, 조영일, 정준우 (USI Accademia di Architettura di Mendrisio, Carnegie Mellon University) 
  • 신사 빌라트 / 강정우, 강지원, 장호준 (연세대학교) 
  • 이태원 짜깁기집 / 우지원, 노혜진 (연세대학교) 
  • 여러겹의 나 여러명의 나 / 박재용, 정유정, 조예원 (홍익대학교) 
  • 사이비 주택 / 구민준, 최호승, 김상호 (홍익대학교) 
  • 담장_현대적 불안감과 편리한 해결책 / 유예빈 (성균관대학교) 
  • 오케아노스의 집 / 이승훈, 정동준 (한양대학교) 

율도피아

이석주, 최인학, 조휘준 (연세대학교)

한때 뭐든지 빨리빨리 받아들이고 배워야 했던 근대화의 후발주자는 이제 국제 질서를 선도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절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여전히 영향을 미친다. 근대적 틀 안에 신자유주의적 문화 현상들이 다중인격적으로 얽혀 있다는 것은 지금의 한국성 담론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한국성을 관통하는 특징을 ‘혼성성’ 과 ‘유동성’이라고 파악했다.

<율도피아>는 콜라주로 만든 풍자적 자화상이다. 기둥과 보의 체계가 근대성을 표상하는 정방형 격자를 이루며, 이는 구조체가 필요하지 않은 부분에서도 전체적인 틀을 유지하기 위해 형식적으로 존재한다. 과장된 슬래브는 전체를 하나로 묶는 동시에 짓누른다. 양산된 아파트 평면을 유형화하여 만든 세 개의 주거 유닛들은 격자 체계에 순응하여 놓여 있는 반면, 여기에 덧붙은 현대적 토속의 요소들은 격자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이렇게 <율도피아>는 그 자체가 하나의 헤테로토피아인 밤섬 안에서 헤테로토피아로서의 한국 사회를 묘사한다. 그것은 가치판단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대한 자조이며, 카프카에 대한 토마스만의 비평처럼 ‘생의 기괴한 그림자 놀이’에 대한 응시의 결과물이다.
 

그래도 사랑하시죠?

이미래, 김상윤, 이지웅 (단국대학교) 

당대의 시대의식을 바로 정립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의 지배적 형태의 시대 의식은 쇠퇴했다.
옳고 그름, 좋음과 나쁨에 대한 판단이 개인의 수준으로 더욱 분산되었다. 이때 레트로의 유행은 단순히 과거를추억하는 ‘재소환’ 에 그치지 않는다. 때문에 단순히 과거 구현에 그치는가, 혹은 현 시점의 개인들이 각각의 가치판단으로 재평가/해석 할 수 있는가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에 깊이 뿌리 내린 과거의 유산을 선별하고, 재평가하고, 재생산하여 현시점의 한국성을 모색해볼 것이다. 
비닐 하우스 역시 현대에 들어서 크게 평가 절하된 대상 중 하나다. 언론과 매체에서 불법 가설 건축물로 사용되는 모습으로 자주 접했다.  <그래도 사랑하시죠?>는 상징적으로 소비되는 비닐하우스는 이분법적인 내 외부 경계를 흐릴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자 한국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문래도 공업지대에 효율성과 필요성을 극대화 시킨 프로젝트를 구성했다.
이 주택은 기둥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도시 그리드가 만들어낸 사이트에 반응한다. 비닐 하우스와 박공 지붕이 덮힌 영역으로 나뉘며, 수평방향으로 이어진 3개의 솔리드 벽면이 존재한다. 이 벽은 투명한 곡선 공간과 만나 주택 프로그램의 경계를 만들어낸다. 이 경계 역시 누군가에게 구분점이자 다른 누군가에는 통합점으로 보이길 바란다. 
 

플러스 마이너스

박서현, 양유진, 최맑은별 (서울시립대학교) 

한국성에는 양면성이 있다. 쉽고 빠르고 직관적인 건물은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을 배제시켰고, 사람은 자신이 발을 딛고 서있는 ‘건물’에 순응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기능주의, 자본주의라는 이념 하에 효율적인 건물을 생산하고 그 안에 사는 누군가는 덧대고 빼는 것이 쉬운 요소들로 삼삼한 공간을 개인의 정체성과 편의, 필요에 맞게 수정한다. 이 순환의 고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견고해졌으며, 혼란스럽고 질서가 없다고 말하는 한국성이 탄생했다. 우리는 이익창출을 위한 생각없는 건물들이 대변하는 부정적 한국성과 그것을 쉽고 빠르고 직관적으로 자신에 맞게 수정하는 한국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낭떠러집

한현수 (강원대학교)

지금, 한국 건축은 경계의 포화상태에 놓여있다. 해방과 전쟁을 겪은 후 이뤄낸 초고속 경제성장은 우리 사회를 물질만능주의에 물들었고 결과적으로 도시는 점점 이기적이며 배타적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21세기로 접어든 지금, MZ세대의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추구하는 노마디즘,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가족 이데올로기의 해체, 코로나 19 팬데믹까지. 이제 한국성은 서로 배척하던 건축에 경계를 통해 다시금 우리 사이의 소통이 필요하다.
<낭떠러집>은 창신동에 위치한 골목길을 부지로 삼는다. 골목길 동네 한가운데 위치한 가파른 돌산은 위아래로 떨어져 있는 집들로 더 눈길을 끈다. 돌산에 걸친 4층짜리 단독주택은 돌산과 일체화된 것처럼 보이며, 사용자는 돌산 자체가 구조이자 벽 그리고 옥상이라는 착각이 든다. 돌산의 윗마을, 아랫마을을 연결해주는 동선 역할인 계단 코어는 층마다 위치한 주택의 베란다와 연결되며 각기 다른 프로그램과 주민들의 참여가 만나 공동체가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낭떠러집>은 경계의 느슨함을 도모하며, 한국 건축의 미래를 투영하고자 한다.

호작도와 참조적 유희

유정민, 김승묵 (국민대학교) 

현재의 한국성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 주변을 둘러본다. 곳곳에 ‘흔한’ 적벽돌 쌓아 올린 양옥이 즐비한 주택가, 이러한 풍경이 한국인들에게 ‘한국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정상인가? 뻐꾸기창, 유럽의 건축물에서 흔히 보이는 코니스, 두터운 몰딩, 아치, 지붕이 불란서의 그 무언가를 닮은 주택들, 오늘날 한국의 주택가는 마치 호작도의 호랑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호작도(虎鵲圖)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인식되던 호랑이의 험상궂음은 온데간데 없고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마치 호작도와 같이 2%부족한 참조들이 모이고 모여 오늘날 정겨운 골목길을 만들었다. <호작도와 참조적 유희>는 우리의 일상의 장면에 관심을 기울이며, 제3의 문화로부터 유래한 다양한 방향의 참조된 결과물들에 눈을 돌린다. ‘멋진’ 건물로 분류되지는 못하지만, 도시 어디에나 지배적으로 존재하는 단독주택들을 다시 참조하는 행위로부터 우리는 ‘지금, 한국성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참가 자격 및 시상

참가 자격 

  • 국내외 대학/대학원 재/휴학생(전공불문), 개인 혹은 팀 모두 가능합니다. (1팀 최대 3인)
  • 참가팀 구성은 건축과 도시 전공자 외에도 인문, 사회, 과학, 경제, 미술, 디자인 등 모두 가능하며 다양한 전공 간의 협업을 권장합니다.
  • 참가등록 당시 학생 신분 혹은 입학 예정을 증명할 수 있는 자 모두 참가 가능하며, 입학 취소자는 추후 수상에서 제외됩니다.
  • 참가팀 정보 수정은 참가 신청 마감 2022년 1월17일 자정까지 가능하며, 이후 팀원 추가 및 변경이 불가합니다.

시상 

  • 대상(5팀): 각 팀에 상장과 300만원
  • 입선(다수): 상장과 기념품
  • 대상 수상자는 정림건축 입사 지원 시 가산점 부여.

참가비 입금 안내

  • 홈페이지 오른쪽 상단에서 참가 신청 완료 후 입금 바랍니다.
  • 참가비는 팀 당 6만원이며, 계좌 이체시 반드시 팀장 이름으로 입금 바랍니다.
  • 참가비 입금은 신청 마감일 1월 17일 자정까지 완료되어야 합니다.
  • 하나은행 162-910013-41704 (예금주 재단법인 정림건축문화재단)
  • 참가비는 환불 불가합니다.
  • 입금명을 또는 메모에 [팀장명+휴대전화 번호 끝 두 자리](예: 홍길동78)로 입력하면 신속하게 확인됩니다.
  • 입금 확인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상태 반영에 시간이 다소 걸리는 점 양해바랍니다.

문의

  • hyun@junglim.org / 02-3210-4992
  • 입금 및 과제 제출 확인은 웹사이트 로그인 후 진행 단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문의는 가능한 한 이메일을 이용해주세요. (*점심시간(12:00-13:00), 주말, 휴일에는 통화가 어렵습니다.)

주최

정림건축문화재단

후원

정림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