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건축: 삶과 공간의 관계 회복을 위한 건축

정림학생건축상 2013

건축建築은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 중 하나인 주住를 일컫는 것으로 일상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대상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건축 서비스는 일상과 유리되고 구체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이는 건축이 우리 삶과 격리된 것은 물론 건축가 자신이 일상의 삶을 기반으로 다양한 건축주의 요구를 귀담아 반영하는 구체적인 건축 프로세스로부터 소외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2013년의 정림학생건축상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반성과 더 나은 방향으로의 발전을 원합니다. 건축을 의뢰하는 사람이 막연하게 꿈꾸는 이상적 공간이 아닌, 주변 공간에 대해 느끼는 문제 인식과 구체적인 바람을 곁에서 직접 관찰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을 학생 여러분이 경험해 보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1) 참가자 주변의 실제 건축주와 직접 소통하고 기록하고 2) 그들이 현재 개선하고자 하는 공간이나 약 5년 후의 근 미래에 살고 싶은 공간을 이해하여 3) 실제로 구현해 제안해주기 바랍니다.

가장 익숙한 현실 속 건축이 물질만능주의에 의한 거래시스템의 일환이 아닌, 기억이 담기고 고쳐 가꿈으로써 건축과 사람의 관계의 회복, 그리고 건축과 건축 프로세스의 회복을 위해 다양한 관점에서 고민을 풀어놓고 스스로 해결해보면서 자신이 가진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태도를 이해하기 바랍니다.


심사위원

심사 위원 





 

 

유 걸 건축가

지난 40여 년간 미국과 한국에서 건축설계 활동을 한 건축가 유걸은 1998년부터 3년 연속 미국 건축사 협회상을 수상하였고, 김수근 건축상과 건축가 협회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가 설계한 밀알학교는 KBS 선정 한국 10대 건축물이며 미국 건축사 협회상, 김수근 건축상 그리고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았다.

신승현 건축가

배재대학교 국제교류관, 국제언어생활관, 신학관 등의 대학 프로젝트, 아산정책연구원, 드래곤플라이 사옥 등의 오피스 프로젝트, 진건주택 및 다수의 교회 프로젝트를 통해 대지와 프로그램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건축관을 세우고 있다. 배재대학교 기숙사로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인천 트라이볼로 굿디자이너(GD)상을 수상하였다.

김정임 건축가 

서로아키텍츠 대표. 마스터플랜과 건축 설계, 인테리어 디자인, 공간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해오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변화하는 구성요소들 간의 상호작용과 관계성을 고찰하고 건축공간에 반영하는 것에 흥미가 있다. 대표작으로는 서울스퀘어(구.대우빌딩) 리노베이션, 제일기획 오피스 플래닝 및 저층부 리뉴얼, 배재대 하워드관, 네티션닷컴사옥과 한남동 라테라스 등 다수의 저층집합주택 프로젝트 등이 있다. 아이아크의 공동대표였으나, 최근 서로아키텍츠를 개소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가 추구하는 가치를 조화시킴으로써 지속가능한 건축환경을 이루는 것을 철학으로 삼고 있다.

멘 토 

조한혜정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한혜정 교수는 여성학과 문화 이론, 문화 기술지, 대중 문화, 문화 변동, 그리고 질적 연구 방법 등을 강의해왔다. 1984년부터 페미니스트 단체인 ‘또하나의 문화’ 동인이었으며 1999년 서울시 청소년 직업체험 센터인 ‘하자 센터’를 설립하였고, 성미산 학교 초대 교장을 지냈다. 최근에는 '고용 없는 성장' 시대의 노동과 삶, 그리고 포스트 후쿠시마 시대의 인류의 삶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면서 생태주의적 페미니즘, 에너지 자치, 그리고 ‘마을 만들기’로 관심을 확장하고 있다.


최종 심사 결과

대상
  • 성수동 주인공들의 공간 (김현숙, 정희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예술학과)
  • 잃어버린 사계 일상을 넣어주다 (백윤경, 원종훈, 김신혜. 한양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 만복이네 공부방 (이형철, 구윤규, 김예진. 연세대학교 건축학과, 신문방송학과,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 그 카센터 (조상민, 김선혜, 오은주.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 동네 일상탈환 (허준영, 김지현, 정기역.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입선

  • 입헌군주제 (신지연, 이호영. 숙명여자대학교 환경디자인과)
  • Leave a Space, Infill Usual (안호진, 김태우. 명지대학교 건축학과)
  • 여러 곳에서 (오세철, 서유빈, 홍성준. 연세대학교 건축학과, 건국대학교 건축학과)
  • Omnibus hAus (이동균, 김정은, 허아린. 인하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과, 인하대학교 건축학과)
  • 여경 탐구생활 (이종상, 이어진, 강명지.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 사소취대 (이진우, 장준태. 명지대학교 건축학과)

성수동 주인공들의 공간

김현숙, 정희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예술학과)

성수동은 과거 명동과 퇴계로 일대의 수제화 공장들이 임대료 상승으로 주변지역으로 밀려나며 만들어진 국내 최대 규모의 구두산업집적지이다. 요즘 이곳은 중국의 대량생산 저가공세와 대기업 납품하청구조에 의해 수제화 시장이 급격히 축소되면서 어려움에 처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공장들이 영세해서 디자인 자체개발이나 판로개척도 쉽지 않다. 최근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은 침체된 구두 제화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디자인 지원과 제작 및 판매지원, 마케팅 지원 정책을 내놓았다.

이 작업은 서울시 디자인 개발정책과 맞물려 건축의 영역에서 '성수동'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에서 시작했다. 서울시가 계획하고 있는 구두 테마공원, 상징물 조성이 외부인을 위한 장치라면, 이 프로젝트는 성수동을 터전으로 살아가며 수제화 타운이란 지역적 특색을 만들어낸 이 지역 주인공들의 공간에 대한 것이다.

처음 건축주와 만났을 때 그의 일상적인 생각조차 오랜 기간 수제화를 만들어 온 장인의 수직적인 강연처럼 느껴졌다. 건축주는 그 지역 구두공장 사람들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제조업 노동자를 보는 일반적인 인식과 열악한 노동 환경까지 더해져 그들의 오늘과 미래가 밝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성수동 구두공장의 다양한 가능성 중 하나로 SPA 공장을 그리는 것을 알게 됐다. 건축주가 꿈꾸는 미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비효율적인 작업 공간 개선이 시급했다. 우리는 건축적으로 큰 변화를 주기보다 공간의 배치와 동선을 바꾸는 최소한의 작업을 통해 공장 사람들이 편해지면서 능률을 올릴 수 있는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공간을 생각했다.

먼저 각 공정이나 작업자의 동선에 혼란을 가하는 공간 배치, 위험하게 보관된 수 백 가지의 자재들과 도구들, 그리고 먼지 가득한 어두운 공장 환경을 문제로 파악했다. 구두 공장의 생산공정은 바이어 미팅 후 디자인과 패턴 작업, 가죽 재단을 거쳐 미싱 작업과 저부 작업으로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다. 그래서 수납벽을 설치해 개별 공간을 형성하되 부분적으로 동선이 겹치는 과정을 고려해 공동 점유 공간을 두었다. 수납벽은 공정의 순서대로 재배열된 공간을 분리하며, 동시에 공통으로 필요한 물건을 수납하여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기도 한다. 즉, 공장 사람들이 각자의 독자적인 공간을 가지면서도 전후 단계와 중간 단계까지 공간적 흐름이 생기도록 했다. 생산의 가장 중요한 단계이자 첫 단계인 바이어와의 미팅도 사무실 자투리 공간을 활용했었는데, 이것 역시 독립적 공간을 확보하고 샘플진열대도 확충했다. 그리고최대 18시간까지 공장에 머무는 직원들을 위해 이용 시간이 겹치지 않는 포장 업무 공간을 식사나 환복 장소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마지막으로 가죽보관창고와 겸하던 재단실을 패턴사와 가깝게 위치시키며 밝은 곳으로 바꾸었다.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 개선과 생산 공정에 맞는 효율적인 공간 변화가 자연스럽게 제품 경쟁력에 반영되어 나아가 성수동의 각각의 공장들이 가지는 비전을 이루어나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잃어버린 사계 일상을 넣어주다

백윤경, 원종훈, 김신혜 (한양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수없이 지나가는 오토바이와 얇은 유리문과 작은 환풍기 속에서 들려오는 미싱 소리가 창신동의 첫인상이었다. 봉제공장들이 모여있지만 하루종일 시끄럽고 어두운 공장에서 맡은 일을 마치느라 서로 교류할 여력도 없다. 지금은 리메이크 된 곡으로 더 잘 알려진 ‘사계’는 원래 1980년대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당시 봉제공장 모습을 묘사하며 부른 곡이다. 사계절도 없이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노동을 반복하는 그들에게 우리는 항상 곁에 있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돌려주고 싶었다.

처음엔 봉제 공정과 공장의 시스템이 생소하고 그들과 교감할 부분이 거의 없다는 점, 그리고 창신동의 수많은 봉제공장 중에서 하나의 사이트를 고르는 점이 고민이었다. 막상 사이트를 선정하고도 봉제공장이 8곳, 주거가 3세대로 이루어진 건물의 건축주 총 11명을 어떻게 인터뷰할지도 어려웠다. 게다가 처음 방문했을 때 2곳을 제외한 나머지 9곳은 1분도 시간을 내어주지 않아서 몇 번을 더 찾은 후에야 겨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거쳐 인터뷰를 하면서 동선과 재료를 중심으로 변화를 주는 리모델링을 하는 것으로 방향으로 맞췄다.

먼저 정면에 큰 창이 있지만 외부의 시선이 불편해서 보이지 않게 막아둔 것을 보고 그들의 작업방향을 반대로 돌려 배치했다. 뒤편의 부엌과 공동화장실 공간에는 작은 마당을 조성하여 계절의 변화를 봉제공장에서 느낄 수 있게 했고, 앞뒤의 출입구는 접이식으로 빛을 끌어들였다. 2층은 접이식 문을 통해 외부 데크와 연결되어 작업 공간을 확장하거나 휴식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어둡고 멀어서 불편했던 공동화장실은 양 쪽에 하나씩 두되 밝은 공간에 위치시켰다. 그리고 하루 종일 앉아서 같은 일을 하는 고된 노동에서 다리와 허리를 펼 운동공간도 새롭게 만들었다. 같은 일을 하고 나란히 살면서도 교류가 없던 창신동 봉제공장에는 이야기와 휴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1,2,3층의 건축주의 동의를 구해 각자의 낡은 부엌을 허는 대신 잘 사용하지 않던 2층 중앙부 공간에 공동 주방과 식당을 만들어 먹고 나눌 공간을 마련했다. 이제까지 1,2층의 봉제공장 사람들과 교류가 없던 3층의 주거자들도 이곳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1, 2층이 여러 봉제공장이 입주해있다면 3층에는 3가구가 거주하고 있어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각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한편 작은 텃밭을 형성하여 주거공간의 공동체 회복도 고려했다. 아이와 노인이 거주하는 3층의 기존 위험하고 낡은 계단 대신 동선을 재설정했다.이런 리모델링 계획안에 대해 그들은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우리는 작은 봉제공장이 모인 그 사이의 자투리공간을 이용하여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그들에게 멀기만 했던 것을 넣기만 했을 뿐이다. 실제로 이런 것이 실현되어 그들이 일터에서 사계를 느끼고 서로 오가며 관계를 만들어 가는 일상이 그들에게도 곧 찾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만복이네 공부방

이형철, 구윤규, 김예진 (연세대학교 건축학과, 신문방송학과,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면서 가족공동체와 청소년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농촌. 농촌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공간이다. 줄어드는 아이들과 그들이 어울리기에 마땅한 공간도 없다. 이런 곳에서 변변한 후원도 없이 운영되는 ‘만복이네 공부방’이라는 작은 공간이 가족공동체의 붕괴로 상처받은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이 작업은 저소득농가, 맞벌이, 한부모, 조손 가정의 아이들이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공간을 실현시켜주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변화된 공부방이 아이들의 꿈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처음에는 과연 이 좁은 건물 안에 이들이 원하는 모든 기능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지하 한 층을 늘인 3개 층의 신축 건물을 구상했다. 그 편이 수월하기도 했고 세련된 외관을 지닌 조형적 측면에서도 가치 있는 작품을 만들려는 욕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만복이네 공부방의 문제점은 면적이 아닌 공간의 비효율적 사용에 있었다. 지나친 분할로 공간이 협소하게 느껴지고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것이었다. 내부구조를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도 많은 부분을 개선될 것으로 보였고 기존 건물의 흥미로운 요소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거기에 건축주의 기존 건물에 대한 애정과 현실적인 상황도 고려해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우리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건축주가 꿈꾸는 공부방은 단순한 방과 후 활동시설이 아니라 공부방을 시작하면서부터 쌓인 생활과 철학이 꼭 담겨야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는 통상적으로 해온 조사나 사례연구만으로는 충족시키기 어려운 깊이였다. 그래서 작업과정은 ‘현장방문 및 인터뷰’, ‘분석 및 설계’, ‘사용자 피드백’의 3단계로 진행되었다.

기존건물은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수차례 부분 수리를 했지만 시공 마다 전혀 다른 소재를 사용해 통일감이 떨어졌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공부방의 컨셉을 전통적인 요소를 가진 목가적인 분위기로 잡고, 공간에 통일감 있는 언어를 주기 위해 벼가 여무는 과정의 3색과 기존의 지붕 색에서 채도를 낮춘 먹색으로 통일했다.

여러 방이 있지만 좁아서 식사를 할 때조차 각 공간에 흩어져야 하는 문제도 있었다. 전체적인 구조는 유지하되 연간 일정표와 프로그램을 분석하여, 이용 시간이 겹치지 않는 프로그램끼리 공간 공유하도록 하여 이를 해결했다. 또한 용도별로 필수적인 20가지의 공간을 비슷한 것끼리 묶고 증축된 콘크리트 건물이 기존 목조건물을 품는 구성으로 10개의 실을 배치했다. 창도 늘여서 햇빛이 잘 들도록 했다.

만복이네 공부방은 지역 주민, 청소년들에게도 개방적인 공간이 되길 지향하는데, 기존의 철문은 쉽게 드나들기 꺼려지곤 했다. 그래서 전면부의 개구부를 넓히고 유리문으로 바꾸었다. 식당이자 자유 공방인 1층 카페의 안쪽에는 댓돌과 평상이 있어 좌식 공간으로 분리된다. 사무실은 개방적인 공간으로 바깥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책상을 배치해 1층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며 컴퓨터실 기능도 겸한다. 사다리가 위험해 이용이 어려웠던 기존의 다락은 계단을 설치해 2층으로 만들고 계단 옆면에 책장, 사물함을 두어 아이들이 어느 층에서나 쉽게 책을 꺼낼 수 있게 했다. 2층 수업공간은 접이식 문을 이용해 용도와 상황에 따라 공간을 합치거나 분리해 사용할 수 있으며 목조구조물의 분위기에 맞춰 전통적인 문살을 사용했다. 그 위는 새로운 다락으로 아이들의 아지트 공간이다.

마지막으로 색, 크기, 형태가 제각각이던 가구들도 개선했다. 붙박이식, 이동식 가구를 공동규격으로 만들어, 면적도 확보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맞게 조합할 수 있게 했다. 일자 목재로 만든 선반과 ㄷ자 형태의 가구의 두 가지를 제안했는데, ㄷ자 가구의 경우 앉은뱅이책상, 의자, 쌓으면 책장으로도 쓸 수 있다. 이들은 기존 가구의 목재를 활용, 목공 수업시간에 함께 제작하여 단가를 낮추도록 했다. 리모델링은 단계적으로 계단→다락→1층 벽체 해체→전면부 순으로 공사하면 공부방 운영 중에도 확장이 가능하다.

그 카센터

조상민, 김선혜, 오은주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홍대 앞 상업 공간들이 만연한 그 거리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아주 오래된 일상을 발견했다. 이제 희귀한 풍경이 되어버린 작은 동네 카센터는 특별한 이름으로 지칭하지 않아도 동네 사람 모두가 아는 어릴 적 ‘그 가게’를 추억하게 한다. 1994년부터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온 강화카센터는 주인아저씨의 시간과 생활을 잔뜩 담고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닿지 않은 데가 없고 들여다보기만 해도 삶의 이야기를 읽어 볼 수 있는 오롯이 일상이 만들어낸 그 곳은 낯선 사람들이 잠시 머무를 뿐인 번화가에서 옛 동네를 떠올리게 했다. 투박하고 익숙한 그 모습은 화려하게 뽐을 내는 카페 건물들 사이에서도 오히려 마음을 끌었다. 그래서 우리는 건축주를 만나보고 싶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너무 익숙한 곳이라 딱히 바라는 게 없다던 첫 인터뷰 이후 계속되는 만남에 열린 마음만큼 조금씩 개인의 일상과 역사가 차근차근 흘러나왔다. 아저씨의 어릴 적 소망과 오래된 홍대 이야기들은 우리 건축의 실마리가 되었다. 강화카센터는 개방적인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쌓인 물건들로 인해 오히려 폐쇄적이고 쉽게 발을 들이기 어려운 공간이 되었다. 구획이 불분명해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없고, 창고 역시 가건물로 이루어져 보안이 취약했다. 하지만 동시에 건축주의 개성 넘치는 공간이기도 했다. 굳이 꾸미려하지 않았지만 구석구석 생활과 시간이 담겨있었고 모든 생겨난 것에 일상적인 의도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저씨의 일상을 존중하는 공간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누구의 기억 속에나 있었지만 이제는 낡아 잊혀져가는 그 카센터. 아저씨의 꿈이 담긴 가게이자, 앞으로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이웃들을 부르는 기억이자 기약의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스스로 끊임없이 만들어온 가게이기 때문에 기능상의 공간 구획은 건축주에게 이미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때문에 구분된 공간들의 기능은 그대로 유지하되 작업과 물품보관을 위한 공간은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했으며, 혼자 오랜 시간을 보내는 아저씨의 생활을 보다 다양하게 할 수 있도록 생활공간과 작업공간을 구분하고자 했다. 또한 건축주의 꿈을 담은 공간을 생각해보았다. 중동 산업역군으로 젊은 시절을 보냈던 건축주는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지만, 어릴 적에는 목동이라는 꿈을 갖고 있었다. 가끔 화단에 키운 상추를 뜯어 이웃들과 둘러앉아 돼지고기 파티를 열고, 작은 텃밭이 딸린 시골 전원주택을 꿈꾸는 건축주에게, 살기 좋은 가게, 살고 싶은 가게로서 그의 일상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그리고 싶었다. 낯선 이들을 위한 공간이 가득해 정작 동네사람들이 발붙일 곳 없는 홍대 앞에서, 이웃들이 괜히 한번 들어와 보고 싶은, 걸터앉아 잠시 얘기나 나눠보고 싶은, 사람 드나드는 마실의 장소가 되었으면 했다. 이는 건축주에게 새로운 취미와 일상이 되고, 나아가 닫혀있던 이웃들이 서로의 일상을 마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고물과 작업도구가 가득한 기능적인 공간이 아닌, 늘 열려있는 친근한 이웃 ‘그’ 가게. 하나부터 열까지 건축주의 일상과 바람을 담은 ‘그’의 가게. 그 곳으로서 우리는 ‘그 카센터’를 제시하고자 한다.

동네 일상 탈환

허준영, 김지현, 정기역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한양대 안산캠퍼스의 대학생들이 그들의 일상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대학동은 사실 그곳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일상이 담긴 공간이다. 학생과 주민이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대학동에서 서로의 일상이 섞이고 지역 공동체가 살아날 방법은 없을까?

주민들과의 인터뷰 결과 그들은 교통, 편의시설, 상권침체, 불법건축물 등을 문제로 언급했고, 물리적 환경은 조성됐지만 주민들의 견해차이, 학생과 주민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부재 등을 꼬집었다. 대학동은 1970년대 서해안간척사업 시기에 이주해온 이 지역 토착민들과2000년대 상가지구 형성 후 터를 잡은 주민 사이에 이해관계가 다르고, 잠시 지내다 떠나는 대학생들은 마을에 관심이 없다. 1990년대 후반까지 학생과 주민 생활의 중심지 역할을 한 석호상가의 역할이 상실된 것도 문제였다.

주민과 학생 설문 자료를 토대로 두 그룹의 일상과 비일상을 살펴보니 흥미롭게도 일상적인 행동일수록 왼편에, 비일상적 행동일수록 오른쪽에 위치했다. 그 밖에 각 구성원의 블록별 일상과 비일상의 빈도를 알게 되었다. 각 주민들의 행동반경은 거주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학생들과 주민들이 일상을 공유하는 지역은 한양대학교 정문에서 석호상가에 이르는 가로에 한정되어 있다. 대학동의 일부지역에서만 일어나는 일상의 공유를 동네 전체로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대학동의 각 위치에 일상을 담고 긍정적 비일상을 일상화 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이런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을 수 있는 장치로써 이동식 폴리를 제안하며 대학동의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 석호상가에 폴리커뮤니티센터를 마련하였다.

폴리는 MDF합판과 사각강관 구조에 이동이 편리하고 서로 공유와 교환이 가능한 동일 모듈의 가구로 구성하여 행위를 담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매일 다른 지역에서 전개되는 폴리는 대학동 구성원과 프로그램의 특성에 따라 운영하고 보관은 석호상가 앞에 정차해 둔다. 도서관은 책장을 덮은 접이식 문과 가구로 구성되고, 카페는 외벽이 펼쳐지며 주방과 가구들이 나타나고, 라디오 부스는 스튜디오와 장비실이 함께 움직인다. 수다방은 비닐 풍선과 프레임으로 구성되고, 이동식 보건소는 두 공간으로 분리된 진료실이 형성되며, 전시 및 공연 장소는 규모에 따라 동일 모듈의 다른 크기로 이루어진 박스를 활용한다. 각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다양한 폴리는 정문에서 석호상가로 이어지는 메인가로와 공원, 나대지 공간에 놓여진다. 그리고 석호상가와 사3동 주민자치센터에 이를 백업하기 위한 센터를 둔다.

폴리 커뮤니티센터가 위치하는 석호상가 입면은 과거의 모습을 모티프로 1층은 아치를 복원하여 아케이드를 두고 2층은 예전 화단을 재해석하여 접이식 창과 화단을 설치한다. 3층은 이와 구분하여 떠있는 유리박스 형태로 수직루버를 일정 간격으로 배치한다. 배면은 기존 외부 비상계단을 모티프로 정면의 수직적 구성을 벗어나 자유로운 형태를 기본으로 한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의 실현가능성과 지속적인 관리를 모색하기 위해 주민 단체, 한양대학교 관계자를 만나보았다. 재원은 주민회비, 국비, 지방비 지원, 한양대학교와의 MOU 체결에 의한 인적·경제적 지원, 학생들의 이용료로 마련할 수 있다. 또한 실험적으로 이벤트를 해서 폴리를 통해 주민과 학생의 일시적인 커뮤니티가 형성됨을 확인했다. 대학동 주민들과 학생들이 서로 이해하고, 활발한 교류를 통해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설계 조건

  • 구체적인 인물(건축주)과 공간(건축물)을 정하고, 그들을 인터뷰하여 디자인 협의를 다져나갈 것 (인터뷰는 3회 이상 권장)
  • 의뢰인의 꿈과 요구사항을 수용한 ‘디자인 과정’을 자유롭게 기록하고,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결과물을 제출할 것 (자세한 사항은 ‘제출사항’ 참조)
  • 설계 대상은 신축과 리모델링 모두 가능
    • 신축 : 사이트의 컨텍스트, 평면, 입면 제출
    • 리모델링 : 기존 건축물과 공간의 사진과 평면도, 평면, 입면, (사이트의 컨텍스트) 제출
  • 사이트나 대상은 자유선택이며, 선택한 주제의 적절함도 심사 대상이 됨